올해가 시작된 지 10여 일 후에 카타르 아시안컵이 개막됐다. 아시안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팀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손흥민, 황희찬, 분데스리가의 지존이자 유럽 최정상급 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는 중앙수비수 김민재, 프랑스 리그앙의 명문 파리 생제르맹의 미드필더 이강인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많아 언론에선 황금세대라며, 63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기대했었다.
대한민국은 아시안컵에서 E조 탑시드에 배정됐고, 요르단과 바레인, 말레이시아와 같은 조에 배정됐다. 조 배정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E조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고, 파울로 벤투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위르겐 클린스만은 축구팬들에게 결승전까지 숙소를 예약하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런데 지난주 수요일 새벽 카타르 알라얀 아흐메드 알리 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2-0으로 패해 우승 꿈을 3년 뒤로 미루게 됐다. 요르단은 피파랭킹이 87위, 우리는 23위이며, 선수 면면으론 우리나라가 훨씬 앞섰지만, 우리 팀은 요르단에 충격 참패했다. 경기 시청하면서 답답했지만, 원인 분석 동영상을 들으며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팀인 요르단의 모로코 출신 후세인 아모타 감독은 우리를 너무 존중하지는 않고, 당당하게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선수들에게 심어줬다 한다. 사실 그날 요르단의 공수와 미드필드 간격은 상당히 촘촘했다. 우리 대표팀의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이 공격하고 양 윙백들이 공격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하면 요르단 선수들은 공격적인 수비로 압박해 우리 공격이 무뎌졌다.
그러다 보니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이 패널티 지역으로 침투하는 건 쉽지 않았는데, 이건 요르단 팀 목표였고, 그들은 이 목표를 달성해가고 있었다. 더욱이 전체적으로 우리의 수비진, 미드필드, 공격진들 간격이 넓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던 울산의 박용우와 해외파인 이재성, 황인범이 부정확한 패스 보내 패스미스 종종 나오고 요르단 선수들 압박에 고립되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상대편 요르단 선수들은 우리의 넓은 미드필드 공간을 이용, 프랑스 리그앙 몽펠리에에서 활약하는 공격수 알타마리에게 자유롭게 패스하던지, 아니면 그가 개인기를 이용해 공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던 거다. 더군다나 압박하면 수비형 미드필더인 박용우는 패스가 불안한 걸 상대팀 요르단은 간파했기에, 이날 경기에서 특히 그를 압박해 전술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첫 번째 실점 장면에서도 박용우 선수가 백패스 하기도 전에 패스가 불안함을 요르단은 미리 읽었고, 박용우가 중앙수비수 김영권에게 패스하려는 순간 요르단의 공격수 알타마리가 볼을 차단해 끌고 가다 알나이마트에 패스했고, 알나이마트는 슛을 날려 대한민국 골망을 갈랐던 거다.
미드필드 압박이 제대로 안 되는 현상은 요르단전뿐만 아니라, 8강 호주전에서도 있었다. 당시 사우디와의 16강 연장 승부로 호주보다도 체력이 고갈되고, 불리한 상황에서 호주 미드필더들의 피지컬을 앞세운 압박에 미드필더 황인범이 패널티 지역 근방에서 패스를 미스해 호주가 그 지역에서 크로스를 연속으로 날리다 굿윈 선수가 대한민국 골망을 갈랐던 거다. 말레이시아전에서도 미드필드에 황인범 혼자 있다. 상대팀 순간 압박에 당해 실점의 빌미가 되기도 했었다.
또한, 요르단전 후반에 실점 만회를 위해 공격수들과 윙백들이 공격했지만, 이들 간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원활하지 못했고 미드필더인 이재성은 요르단 선수들의 압박플레이에 시달렸다. 그때 이강인 선수가 미드필더인 황인범에게 패스하려는 순간 알타마리가 볼을 끊었고, 당시 경고 한 장을 먹었던 황인범은 알타마리 수비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웠고, 이에 수비수들도 뒷걸음치다, 결국 알타마리에게 골을 먹혀 2-0으로 리드 당했다. 이후 우리의 만회 골은 나오지 않았다.
공격진들과 공격하는 윙백들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했던 건 사우디전 때도 발생했다. 그 때문에 사우디전에 우리가 그렇게 위협적인 득점 장면을 많이 만들지는 못했다. 이런 현상은 아시안컵뿐만 아니라, 이전 평가전에서도 있었다. 다만 16강 사우디전과 8강 호주전은 상대팀이 후반에 아예 내려와서 수비했고 손흥민의 한 방과 이강인의 공격이 워낙 좋아 그게 결국 승리로 연결되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공수 미드필더 간격이 넓었던 건 4강 요르단전뿐만 아니라, E조 예선 요르단전과 말레이시아전, 8강 호주전 등에서도 반복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미드필더들이 상대팀 압박에 시달리고 패스미스가 잦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었다. 이것 또한, 아시안컵뿐만 아니라 이전 평가전 등에서도 반복되었던 문제점들이다.
공수, 미드필드 간격을 촘촘히 하는 것, 미드필드 압박과 탈압박, 그리고 공격진들과 윙백들 간의 유기적인 플레이 등이 잘 된다면, 축구팀의 조직력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이전 벤투 감독 시절엔 나름대로 좋았는데,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리 대표팀의 조직력은 좋지 않았고 무너졌다. 조직력을 다지는 최종 책임은 감독 몫이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위에서 말한 문제점들을 평가전에서 노출하더니 아시안컵 때도 드디어 반복하고야 말았다.
사우디전 전반전 외엔 어느 것 하나 좋은 조직력이나 전술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며 클린스만 감독이 상당히 무능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브라질월드컵 우승 주역이자 당시 독일 대표팀의 윙백이었던 필립 람은 클린스만이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 전술훈련은 없었고, 오로지 체력훈련만 시켰다며 선수들끼리 전술을 짜야 했다고 고백까지 했었다. 미국 대표팀 말년에도 전술이 좋지 않아 성적 부진에 시달리다 경질을 당한 적도 있다.
더군다나 4강 요르단전 전반 때 박용우 선수의 활약이 부진한 게 보였기에 나로선 박진섭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기고 황인범이 박진섭을 도와주는 식으로 해 미드필드에서의 불리함을 어느 정도 커버해주었으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후반에도 박용우를 그대로 기용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거다. 이런 선수기용과 관련해선 전적으로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몫인데, 후반에 선수 교체를 적시에 안 한 것만 봐도 클린스만 감독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됐다.
이런 감독이 미국대표팀에서 브라질월드컵 이후 성적 부진했고, 헤르타 베를린에서도 70여 일 만에 사퇴 의사 밝히고, 독일월드컵 당시 대표팀 전술을 요하임 뢰브에게 일임했다는 것 정도는 인터넷 검색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는 거다. 그것만 했어도 클린스만을 파울루 벤투 이후 차기 감독으로 선임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런 감독인데도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 정몽규 회장은 그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여기에 대해선 정몽규 회장이 그동안 FIFA 부회장 선거 등에서 참패하며 축구 외교에 어려움을 겪고, 외교를 잘하지 못해, 이를 만회하려고 국제축구계에 인맥이 넓은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임하고 그를 자신의 외교 입지에 활용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사실관계는 확인해봐야 알 수 있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런 무능력한 감독을 정몽규 회장이 선임해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고, 이사회는 회장 거수기 역할을 하니, 실제로 축협이 이번 요르단전 포함해 카타르 아시안컵 졸전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더욱이 감독 선임과정과 관련해 현대축구에서 우리 대표팀이 하고픈 축구가 있을 것이다. 수비적 색깔의 축구, 아기자기한 미드필드 패스, 강한 빌드업과 압박·탈압박을 통한 축구 구현 등등 말이다. 이전 벤투 감독 선임 시엔 당시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현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이 능동적으로 경기 지배하는 능동적 축구를 하려는 목적으로 그 감독을 데려왔다고 선임 이유를 축구팬들 비롯한 국민들에게 명확히 설명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 비전도 제시하는 등 선임과정도 투명했다.
실제로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은 임기 초반엔 잡음이 많았지만, 공수와 미드필드 간격을 촘촘히 유지하고, 빌드업을 통해 능동적이면서 때로는 역습도 추구하는 능동적 축구로 대한민국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일관성 있는 축구 철학이 있었고, 여기에 선수들 보호에 전력을 다하며 선수들의 신임을 얻었다. 이렇게 한 결과는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었다. 현장에서 16강 진출을 지켜본 기쁨은 지금도 나의 뇌리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정에선 우리가 하고 싶은 축구에 대해 축협 차원에서 차기 감독 후보들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어떤 기준으로 이들을 평가했는지 등 선임과정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합리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됐다. 축협 회장도 단순히 클린스만에게 신뢰가 가 선임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클린스만을 차기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클린스만은 국가대표 전력감이 될만한 선수들을 뽑기 위해 K리그를 유심히 관전하는 등의 활동을 등한시했고, 시간 대부분을 재택근무, 유럽출장 등으로 때우며 선수들 파악에 상당히 게을렀다. 아시안컵 본선에서 상황에 맞는 선수기용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였고, 여기에 로테이션도 돌리지 않는 등 선수 운용 계획 부재 및 무색무취의 전술, 촘촘한 공수 간격 등 이전 벤투 감독이 잘 구축한 빌드업 축구를 무너뜨린 것까지 겹쳐 요르단에 참패를 당했다고 본다.
결국, 축협 차원에서 대한민국 축구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청사진과 비전, 행동계획 부재에 선수파악을 게을리하고 전술 고민이 부재한 등 감독의 무능과 불성실한 태도까지 겹친 게 이번 아시안컵 졸전의 원인이라는 거에 이견을 다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런데 이걸 보며 현재 우리 정부가 생각났다.
2년 전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정부는 UN 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국가심의를 받았다. 위원회에서 권고를 받은 후 작년 3월 9일 앞으로 5년간 시행하게 될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탈시설과는 거리가 먼 방향에, 성 고정관념 속에 묶인 장애여성 정책, 예산으로 통제하는 장애인 정책계획 등 장애의 인권적 모델과는 거리가 멀고 사실상 권리가 제한되는 정책계획을 발표한 거다.
정책계획을 세울 시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를 초대하지 않는 등 이들의 목소리를 사실상 배제했고, 정책계획 초안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구할 시 일부 전문가들과 감각장애 당사자들 등에게만 하는 등 계획 수립의 투명성도 조금은 부족했다. 이외에도 장애인식 제고와 장애 혐오 대항을 위한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계획을 도입하라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도 현재 이행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실질적 통합교육 부재에 자극적인 언론 보도, 언론의 장애 특성 몰이해 등이 합쳐 장애학생 혐오가 팽배하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권적 관점과 거리가 멀고 강제입원 우려 많은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이 나오는 것도 이 사회에선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보호고용이 적지 않은 대신, 일반 노동시장으로의 전이 사례는 얼마 되지 않는 장애인고용의 현실, 부양의무제 폐지가 안 돼 가족에게 부양책임을 일차적으로 전가하는 등의 현실이 여전하다.
한편, 국가부담의 연금, 인건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이 정부에선 공무원 감축 방안을 발표하고 실제로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올해 인권위 장애차별 조사1과의 경우 그런 움직임으로 인해 인원이 감축되었고, 조사2과 인원수는 그대로라고 했다. 아울러, 인권위 상임위원이나 비상임위원 등에게 훈련 수준의 장애인권리협약 교육은커녕 단순교육조차 이뤄지지 않는다고 인권위 관계자가 답변했다.
조사1과는 재화, 용역, 고용,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장애인차별에 대해 조사하므로 시설 인권침해 조사와 관련된 조사2과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인력이 요구되어 인력 증원이 필요한데, 증원은커녕 오히려 감축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진정사건 처리 시 이전보다 더 많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훈련 수준의 장애인권리협약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니, 이러면 장애인차별로 인해 진정되는 사건은 인용보다는 기각될 여지가 이전보다 더 농후하다. 북한 인권에 신경 쓴다는 인권위가 장애인 인권증진은커녕 오히려 퇴행시킬 우려를 낳고 있는 거다. 공무원이 줄어드니 그나마 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 관련된 부서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의 기능도 약화될 것이 우려된다. 그 과도 순환보직제로 인해 권리협약에 대한 전문성이 제고되기 어려운 구조지만 말이다.
이 모두가 다 장애인 인권증진은커녕 오히려 장애인의 권리가 제한되고 인권침해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다. 이는 장애인 인권증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중장기적 청사진과 행동계획이 부재하다는 게 한 몫을 차지한다. 이런 부재 속에 결국 피해 보는 건 장애인 당사자들이다. 마치 축협의 중장기적 축구발전 계획 및 청사진 부재가 결국에 아시안컵 졸전으로 이어지며, 선수들이 피해를 본 것처럼 말이다.
장애의 인권적 모델을 중시하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행동계획이 장애인 당사자의 주도적인 참여 속에 나오는 등, 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과 청사진을 마련·제시하는 게 정부 차원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장애인 인권보장을 위한 구체적 정책, 제도, 법 내용이 나올 때 이 사회에서 장애인 기본권 보장이 구현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아시안컵이 끝나고 나서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을 돌아보겠다는 말을 하고, 이번 주에 미국에서 잠시 머문 다음 유럽으로 선수를 살피러 가겠다고 했지만, 지난주 미국으로 출국해 프로정신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줘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바라기는 이번 아시안컵 졸전을 계기로 클린스만 감독 경질은 물론, 축협 회장 퇴진 및 형식적 이사회 해체 등 축협의 전면적 개혁의 전환점이 마련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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