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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순-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전지혜 작가의 ‘수다 떠는 장애’ 중 표현을 빌리자면, 공적 관계를 맺어 이용인의 사적인 영역을 드러내 보이거나, 공유하는 사람이 활동지원사이다.
나는 십수 년간 수십 명의 활동지원사를 만나고 떠나보낸 이용인으로서 그런 계약 관계를 통해 내 신체와 세간살이를 속속들이 보여주었다.
나를 거쳐 간 활동지원사를 세보진 않았는데, 대체 몇 명이었을까?
짧게는 며칠, 길게는 6년을 나와 함께 했던 그녀들을 거쳐 갔다고 표현하는 것은 하루 8시간을 껌딱지와 같이 붙어 함께 밥 먹고, 몸으로 부딪쳤어도 어떤 이유로든 그만두는 시점이 올 때, 뒤도 돌아보지 않는 모습을 꽤 봐왔기 때문이다. 한번 일했던 이용인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그들만의 불문율도 있다고 들었다.
그녀들 중 어떤 이는 나와 함께 길을 걷다가 지인을 만났을 때 자기가 하는 일이 장애인의 치다꺼리 정도로 보일 거라 싶었는지 쭈뼛거리거나, 걸음을 늦춰 나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했다.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노인의 그것과는 달리 그녀에겐 왜 그리 부끄러운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의 첫 활동보조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서른 초반의 아기 엄마였고, 자기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았던 나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스스로 선생님이라고 자칭하곤 했다.
가령 “그건 선생님이 해줄게요.”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씀으로써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라는 대사로 알려졌던 드라마의 김하늘 배우를 떠올리게도 했다.
어느 날은 출근하자마자 아직 기상 전인 내 옆에 벌러덩 눕더니 조금만 같이 자다가 일어나서 점심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식사 준비와 도움 대신 자신이 배달 음식을 시켜주겠다고도 했다. 밥 사는 걸로 식사 도움을 퉁치면, 신체 도움과 가사 도움 정도로 남은 시간을 채우면 될 터였다. 어린이집에 유아를 맡기고, 부랴부랴 아침 출근 행이 고단했겠지 싶으면서도 뭐 이런 활동지원사가 다 있나 싶었다.
명랑한 그녀의 발칙함에 어안이 벙벙하던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그녀다움의 정점을 찍는 아침을 맞았다. 약속된 9시가 한참 지나도 그녀가 출근하지 않아서 전화했는데, 도통 받질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누워 기다리던 나는 활동지원서비스 중개기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했다. 한 시간 후쯤 두 명의 도움 인력과 함께 담당자가 방문해서 그제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작은방에 걸려있던 그녀의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 우산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담당 코디에게 그녀 물건을 얼른 가져가라고 했다.
“그런 사람은 활동보조인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도 말했다. 중개기관 코디네이터도 업무의 특성과 취지를 무시한 그녀의 행동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른 지금의 나였다면 그 또한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누워서 2시간 가까이 오줌을 참았던 그땐 모멸감에 치가 떨렸다. 특수학교 교사가 꿈이었다고 했던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그 후로 난 다양한 성격과 특이점, 기질의 사람들을 활동지원사로 만났고, 몸으로 돕는 도움을 받으면서 맘을 맞추기 위해 나름 노력하였다.
코로나가 입을 막고, 출입을 통제하는 동안에 두 명의 활동지원사와 함께 코로나에 감염됐었는데, 그중 한 명이 자청하여 끊임없는 돌봄을 해줌으로써 밥과 약을 챙겨 먹으며 회복할 수 있었다.
낯선 그들과 익숙하고 편안해지기까지 활동지원사 못잖은 속앓이와 노력을 하는 사람이 서비스의 주체인 이용인이다. 원하는 서비스와 의견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이용인도 돌봄자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노라면, 돌봄자의 눈치를 보며 그의 기분을 살피게 된다. 자기 의사와 욕구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의 이용인이라면, 어떨까. 중증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완전한 주체와 자립이란 가능한 것일까.
요즘도 여전히 아침 아홉 시면 활동지원사가 출근하고, 지압과 엄마손 약손 배 문지르기로 나의 하루는 기지개를 켠다.
외출이 없는 날은 그렇지만, 여러 바깥 볼 일이나 내가 하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의 일정이 있는 날엔 신체기능 유지 돌봄은 생략한다.
밤새 누구와 한바탕 몸싸움을 한 양 온몸이 쑤시고 아파도 일단 일으켜 앉혀주면, 살만은 하다 싶다. 활동지원사가 탈의를 도와주면, 욕실 벽에 기대 앉아 양치질을 하며, 청소기 돌리던 활동지원사가 머리 감겨주길 기다리고, 비누 목욕을 해주면 착의하고, 옷매무새를 살핀다.
주 중 무슨 요일에 비누 목욕을 할지 정한 대로 서비스받고, 옷 색깔로 옷을 찾아 달라고 하면, 나는 분홍이라 불렀건만 그녀 손엔 주황이가 들려있는 해프닝도 심심찮게 있다. 생각해보면 같은 미술책에서 색깔을 배웠으나, 한 미술 선생님에게서 색감을 배우진 않았으니까 있을 만한 일이다 싶다.
같이 살아가노라면, 그도 내 맘 같겠지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라는 걸 또 그렇게 배운다.
한 달에 한 번 염색하고, 전날 장봐둔 식재료로 함께 점심밥을 준비하고, 오후에 외출 일정을 공유하며, 사회활동하는 것도 활동지원서비스의 일부이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중증 지체장애인인 내게도 일상생활을 위한 물건들은 약속된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윗동네 걸려있는 가위나 컵은 그림의 떡이요, 아랫동네에 놓여있어야만 내 것 같은 내 살림인 것이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남편도 외출하고 없었던 날, 이제 일을 막 시작한 초보 활동지원사가 화장실 문을 잘 닫아놓고 퇴근해서, 나뿐 아니라 화장실에서 배변하도록 훈련받은 반려견도 오줌을 참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
외출했던 남편이 귀가해서야 반려견도 나도 식은땀을 흘리며 오줌을 눌 수 있었다.
그래서 활동지원사의 이동선을 따라 내 시선이 굴러다니기도 하는데, 그가 못 미더워서나 심심해서가 아님에도 가끔 오해를 산다.
쌓이면 안 되는 게 어디 먼지뿐이랴. 오해도 쌓이면 사달이 나니 활동지원사와 눈맞춤 하면서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필요하거나, 아니거나 많은 말을 쏟아낸 후 활동지원사가 퇴근하면 난 침묵 속에 풍덩 빠지곤 한다.
불만보다는 고마움이 크게 와닿는 3년 안팎의 활동지원사 두 사람과 함께하는 요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부디 그녀들이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녀들의 피곤함이나 아픔이 읽히면, 오늘 내 하루의 일정을 조율하고, 계획했던 것들을 지혜롭게 연기하려고 한다. 제아무리 돌봄로봇이 욕구별로 개발되고, 업그레이드된다 한들 사람의 온기와 손길만큼 섬세하고, 시의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내 자잘한 요구에 앉았다 일어서길 수십 번 반복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녀들이 있어 오늘 내 하루의 주름이 펴진다. 그녀들이 나를 만나 얻는 것이 시급 얼마에 그치거나, 재화를 팔고 사는 생산자와 소비자로서의 관계에 그친다면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착한 직업이라든가, 보람 있는 일이라는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라벨은 부적절하지만,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 정도는 꼭 가졌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그 일은 식당일보다 괜찮거나, 못한 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이용인은 돌봄을 제공하는 그들의 노동권과 휴식권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내가 받는 서비스의 질도 상승하지 않을까 한다.
지난해부터 십수 년의 내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경험을 바탕으로 서비스 실제 이용사례와 돌봄 제공 인력의 역할과 자세 등에 대한 교육의 자리에 서고 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있어 활동지원서비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었고, 장애 가진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이면 재테크가 아닌 활동지원서비스를 화두 삼게 된다.
돌봄로봇으로 집안을 채울 재력과 능력이 없는 나로선 오늘도 그저 내가 좀 새털처럼 가벼워져라 주문을 걸어본다. 부디 기술만이 아닌, 보살핌의 원칙과 전문성을 갖고 이용인에게 오시라, 그대들이여!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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