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장애계소식 정보&뉴스

정보&뉴스

정보&뉴스
게시글 검색
화가 뭉크는 어떻게 조현병을 이겨냈나?
장사연 조회수:262 14.63.22.20
2024-07-17 09:30:11

화가 뭉크는 어떻게 조현병을 이겨냈나?

병은 나의 그림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율도
  •  
  • 입력 2024.07.16 09:02

 

그림 ‘절규’가 명작인 이유는 감정 숨기지 않고 표현, 본능 자극했기 때문

절규 The scream (1893년)
절규 The scream (1893년)

뭉크는 많은 죽음을 보았다.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죽음, 열네 살 때 누나의 죽음, 아버지와 남동생도 뭉크가 어렸을 때 죽었고 다른 여동생 로라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뭉크는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림 ‘절규’는 이런 개인의 심리를 반영한 것인데 당시 승전한 독일에서 암울한 그림은 환영받지 못했다. 뭉크가 출품한 전시회는 결국 1주일 만에 중단되었고 뭉크는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도시의 분위기도 절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류계급은 독선적이며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생각도 고리타분했다.

드러내기 불편한, 불안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 왜 고가에 팔리고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칭송할까?

그림 속에서 솔직한 인간 본성을 보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소리를 지른 것처럼 감정을 발산하는둣한 역할을 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으로 유명한 프로이트 식으로 ‘절규’를 해석하면 현대인들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기에 일상의 분노와 공포를 표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친절과 예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빙산의 5% 밑에 감추어진 95%의 동물적 본성을 그림이 보여주어 불편함을 주지만 가면을 벗어버린 것 같아 한편으로 쾌감이 일기도 한다.

‘절규’ 그림을 보면서 우리의 불안이 치유되는 이유는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서 내 속의 불안을 밖으로 끄집어 내기 때문이다. 불안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우리는 치유가 되는 것이다.

불안과 병은 나에게 필요하다

뭉크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강한 인간이 되자고 했던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뭉크의 아버지는 맹목적인 기독교 신자였는데 뭉크는 이에 반발했다. 가족들이 모두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신의 존재를 믿지 못했다. 병약했던 뭉크에게 니체를 만나면서 초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뭉크는, 니체가 역설한 ‘인간은 자신의 삶에 나타난 모든 과정들을 그저 견디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다.

벌목하는 사람 Tree feller (연도 미상)
벌목하는 사람 Tree feller (연도 미상)

벌목은 범법 행위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생존 본능에 의한 행동이라면 괜찮다는 니체의 자유 의지 메시지를 담아 생의 의미를 더욱 불태우게 한다.

인생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결과가 나타난다.

뭉크의 긍정적인 생각은 수많은 병을 앓았음에도 유화 1,100점을 그리면서 80세까지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뭉크는 많은 병을 앓았다. 불안, 불면증, 대인공포증, 건강염려증, 알코올중독, 류머티즘 등을 앓았지만 ‘질병은 나의 천사’라는 생각이 건강하게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병을 싫어하고 병이 빨리 물러가기를 원했겠지만 뭉크는 반대로 위대한 생각을 했다.

“불안과 병은 나에게 필요한 존재다. 불안과 병이 없었다면 나는 키가 없는 선박과 같다”라는 생각이 예술가로서 성공을 이끌었다.

뭉크는 심지어 ‘나는 정신병이 낫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신병은 나의 그림에 도움이 된다.’ 라는 파격적인 생각으로 질병을 가지고 놀았다.

자신의 치부인 병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예술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화가 뭉크는 어떤 것도 행복과 불행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철학자이기도 했다.

태양의 빛처럼 다양한 감정이 소중하다

태양 The sun, (1910~1912년)
태양 The sun, (1910~1912년)

뭉크의 말년에는 작품의 컬러가 아주 밝아진다.

뭉크는 1908년에 알콜 중독과 싸움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환각과 사람들이 자기를 훔쳐보는 망상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야콥슨 박사를 만나 8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충실히 치료를 받은 후 좋아졌다.

뭉크는 어두운 가족사를 자신의 죄로 생각하며 괴로워하다가 그것을 떨쳐 버리니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뭉크는 퇴원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1911년 오슬로 국립 대학교 100주년 기념 아우라(Aula) 대강당 신축 벽화의 제작을 맡았다.

벽화에 그린 그림을 다시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게 된 것이 <태양> 그림이다.

춥고 어두운 북유럽에서 태양은 소중한 자연가치인데 비로소 희망의 상징인 태양을 그림으로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를 떠날 뿐

별이 빛나는 밤 Starring night (1923~1924년)
별이 빛나는 밤 Starring night (1923~1924년)

<별이 빛나는 밤>은 뭉크가 말년의 고독한 심정을 극작가 헨릭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의 ‘요한 가브리엘 보크만’(Johan Gabriel Borkman)에서 암시받아 그린 그림이다.

주인공 보크만은 광부였는데 탄광을 탈출하여 은행 일을 하다가 실패하여 감옥에 갔다 와서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인물이다. 스스로 유폐시킨 것은 뭉크의 모습과 비슷하다. 뭉크도 그림을 팔아 부를 얻었지만 홀로 고독을 택하고 고독을 즐기고 예술의 세계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뭉크는 죽음의 그림자 안에서 그는 열정을 다해 작품에 매달렸고, 어두움의 고통과 불안, 두려움을 표현하여 그 의미를 찾으려 하였다.

그리고 자아를 찾고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함으로써 에너지를 얻었고, 또한 치유의 기회를 얻고자 하였던 것이다.

뭉크의 자화상이 노르웨이의 화폐 1,000크로네에 새겨질 정도로 국민적 존경을 받았다. 뭉크는 1944년에 육체는 죽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김으로서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 가슴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를 떠날 뿐. 내 썩은 육신에서 꽃들이 자랄 것이고, 난 만발한 꽃들 속에서 살아가게 되리라. 죽음은 삶의 시작이요, 새로운 결정체의 기원이다.”

참고도서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심리학>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