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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얼마 전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유로 2024(유럽선수권대회)의 화두 중 하나는 ‘뻥축구’였다. 뻥축구는 골키퍼나 수비수처럼 후방에 있는 선수가 전방의 공격수를 향해 한 방에 길게 공을 ‘뻥’ 차서 연결하면, 피지컬이 좋은 공격수가 이 공을 따내서 골로 연결하는 아주 단순한 전술이다.
현대축구는 뻥축구보다는 ‘빌드업’ 축구의 성격이 더 짙다. 최후방의 골키퍼부터 발기술과 패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수비수, 미드필더를 거쳐 공격수에 이르기까지 공을 잘 운반해가는 빌드업을 중시한 전술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이번 유로 2024 대회에서는 빌드업보다 뻥축구를 하는 팀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팀이 전술을 구사하는 이유는 팀내 핵심 선수의 부상 등이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가장 크고 중요한 목적은 ‘승리’를 위함이며 더 나아가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함이다. 승리를 하고 우승하기 위해서는 골을 넣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전방의 공격수에게 공을 보내는 뻥축구 전술을 내세우는 몇몇 팀들을 보며, 축구 해설가들은 현대축구의 패러다임이 빌드업에서 뻥축구로 되돌아갔다는 말을 한다.
현대축구의 패러다임, 유행이 돌고 돌아 예전의 뻥축구로 다시 돌아온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과 그 유행은 어떠한지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시민들의 인권 감수성이 향상될수록 장애 감수성도 분명 높아지고 있다. 초등학교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가면 더 이상 ‘체험형’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선호하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다. 눈을 가린 채 흰 지팡이를 잡고 걸어본다거나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로 이동해 본다거나 하는 내용보다는, 정말 장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장애인과 함께해야 하는지, 다름을 이해하는 ‘사회적’ 장애인식개선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채용 면접에서 장애에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장애인 차별이라는 사실도,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나 안내견과 동행한다는 이유로 식당 등의 출입을 거절당하는 것도 장애인 차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십 년 전이라면 이런 일을 겪어도 ‘장애인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공론화하기 쉽지 않았다.
또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탈시설 운동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장애인식개선교육과 달리 이렇게 장애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제도적인 장치들은 시대적 흐름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 아닐까 생각한다.
탈시설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탈시설지원법이니 서울시에서 탈시설지원조례를 만들었다느니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서울시에서는 탈시설지원조례를 시행한 지 2년 만에 폐지한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중증장애인의 권리중심 일자리를 시행한다면서 그 중증장애인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기도 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십 년도 아닌 이십 년이 넘는 시간 투쟁을 하고 있다. 그 유명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는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된다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이런 투쟁은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투쟁은 시대적 흐름이나 유행, 패러다임이 없이 여전히 같은 패턴 그대로다.
조국의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골을 넣고자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최전방의 공격수에게 공을 ‘뻥’ 차서 보내고,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공을 따낸 공격수는 공을 잘 컨트롤하여 슈팅을 한다. 그렇게 들어간 골이 승리팀, 우승팀을 결정하게 된다는 게 스포츠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우리 장애인은 어떤가?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감수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장애인들이 투쟁하고 시위하는 목적은 승리나 우승이 아닌 ‘생존’이다. 지역사회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인권을 보장받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활동은 생존을 위한 쟁취, 그 자체다.
취업을 해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 시대에서 과연 패러다임이나 유행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의 생존권을 위한 움직임은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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