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니엘 블레이크요. 영국 뉴캐슬에 살고 있는 실직자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좀 유식을 떨면 딜레마에 빠져 있지요. 40년 간 목수로 일했다우. 의사는 내가 심장에 문제가 있으니 일을 하지 말라 합니다. 질병 수당을 받으려고 신청하자 수당 지급 담당자가 질문을 합니다. 혼자서 50미터를 걸을 수 있느냐, 양팔을 들어 올릴 수 있냐는 식의 질문만 하기에 내가 낸 의료기록을 보라 했습니다.
거기에는 심장에 대한 문제점이 적혀 있거든요. 야, 그 공무원 한 고집합디다. 전화기를 버튼을 눌러 걸 수 있나요? 두 팔을 들어 모자를 쓸 수 있나요? 묻기에 나는 틱틱거릴 수밖에 없었고, 질병수당 지급 불가 판정을 받았소. 그래서 실업수당을 신청하러 가서 고생 끝에 신청은 했는데 일자리를 바로 소개하더군요. 의사는 여전히 일을 하면 안된답니다. 그래서 취업거부를 했더니 실업수당 명단에서 빼버렸습니다. 이러니 어찌해야 하겠소?
돈은 없는데 몸은 아프다. 질병수당은 못 받는다. 일을 해서는 안된다. 일을 안하려 하니 실업수당을 못 받는다. 이런 딜레마 상황을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합디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관객을 집중시킨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건 영화제작자나 좋을 일이지 몸으로 닥쳐 맞는 나는 정말 죽을 맛이오.
아내 몰리는 치매로 오랜 기간 고생하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를 위해 간병비, 병원비로 쓴 돈이 많아 현재 내가 가진 재산은 전무합니다. 영국은 복지가 잘 되어있기로 이름난 나라지요. 420여년 전인 1601년 빈민법(Poor Law)을 만들어 빈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초로 천명한 나라기도 하오. 그렇다면 지금은 빈곤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어야 당연하지요.
실업수당을 신청하러 갔더니 여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류를 글씨로 써서 내면 안 받는답니다. 모든 것은 인터넷으로 해야 한답니다. 목수일 40년을 한 내가 컴퓨터를 다룰 수 있을까요? 어떻소? 당신네 나라서는 노인도 컴퓨터 척척 사용하오? 센터에 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신청은 했습니다.
일자리를 소개해 줘도 의사는 일하면 안 된다니, 소개해 준 일자리를 받지 못했고 서류도 빨리빨리 제출하지 않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을 사용해서 체계적으로 활동하라는 정부의 지침에 비협조적이라는 판정을 받아 실업수당 배정 명단에서 삭제당했습니다. 어이없나요? 당신네 나라 복지 이야기도 피장파장입디다. 장애인 복지를 돕는 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아주 싼값으로 대여해 준답디다. 수동휠체어에 다는 모터(100만원도 넘습니다.)도 주고, 집게도 빌려주는데 자격이 있다더군요. 취업한 장애인에게만 준다는 겁니다.
취업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장애인이 몇이나 될까요? 실제로 도움받을 제품이 필요한 사람은 취업 못한 장애인이지 않을까요?
센터에서 케이트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런던서 살다가 집값이 싼 뉴캐슬로 이사를 왔습디다. 그녀 역시 돈이 없었어요. 공과금을 못내 촛불로 난방을 하며 살 정도입니다. 당연히 정부보조금을 받을 조건은 이미 초과했지요. 보조금 신청하는 시간에 늦었다고 접수를 받아주지 않습디다.
“뉴캐슬 지리를 몰라 구직센터 찾느라고 상담 시간에 늦었어요” 해명을 했지만 공무원들은 ‘시간 엄수가 원칙’이라는 같은 말만 반복할 뿐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내가 보고 그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빈민을 위한 푸드뱅크에 갔다가 케이트를 만나서 함께 식료품을 얻어냈습니다. 오랫동안 애들만 먹이고 자기는 굶고 지냈는데, 나의 도움으로 찾아간 푸드뱅크에서 식료품을 담던 중 아이들에게 먹일 통조림 하나를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따 먹습디다. 나는 모른척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에 가서 고장이 난 화장실 변기도 고쳐 주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먹지 못해 쓰러져 있을 때 케이트의 딸인 데이지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돌아가라 하자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릴 도와주셨죠?”
“그랬지”
“저도 돕고 싶어요”
돈이 없는 케이트는 성매매업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가서 그녀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나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자존심이 없다는 것은 죽은 것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그런데 이건 번역이 자존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건물 벽에 스프레이로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다. 나 굶어 죽기 전에 질병수당 재심 날짜 좀 잡아 줘라” 이렇게 쓰고 주저 앉아 시위를 했습니다. 시위라기보다 내가 이 세상에 투명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마침내 질병 수당 재심 날이 와서 센터로 나갔습니다. 모두 잘 될 거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복지사도 만났습니다. 예감이 좋았습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습니다. 화장실에 갔습니다. 쓰러졌습니다. 죽었습니다. 심장마비였습니다. 그날 갑자기 심장마비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답답한 복지행정은 매일매일 잽을 치듯 제 심장을 쳤지요. 그것이 쌓여 일이 터진 겁니다.
나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사람은 켄 로치 감독입니다. 켄 로치 감독은 칸느가 특별히 애정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대상인 황금 종려상을 나의 이야기로 2016년에 한번, 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2006년에도 받았구요, 심사위원상도 1990, 1993, 2012년 세 차례 받았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지요. 신기합니다. 빈민이나 약자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절대 어떻게 하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툭 던져놓듯이 영화를 만듭니다. 판단은 관객이 하셔야지요.
이 작품의 칸느 수상소감이 멋집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 위험한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해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 이야기인데, 우리는 무얼 해야 희망의 메시지를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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