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장애계소식 정보&뉴스

정보&뉴스

정보&뉴스
게시글 검색
[유금순의 토크백]여행도 인생도 비움과 채움의 연속
장사연 조회수:279 14.63.22.20
2024-09-30 09:46:26

[유금순의 토크백]여행도 인생도 비움과 채움의 연속

By

 유금순

 -

 

 

▲여행을 떠나다 ⓒ픽사베이
▲여행을 떠나다 ⓒ픽사베이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고 ‘행복의 기원’(2014)의 저자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말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군데군데 떨어져 있을지 모를 그런 행복을 줍기 위해 여행길에 서는 게 아닐까.

털어내도 쌓이는 먼지처럼, 무한 반복의 우리네 일상에서 한발 치만 떨어져 보면 그 지겹도록 재미없던 일상도 그리워지는 신기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자유로운 여행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남편과 나는 5년 전에 무리해서 슬로프 차량을 할부 구입하였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설레고, 물건 역시 사기 전이 설레는 듯하다. 보기도 아까운 슬로프 차량을 갖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를 맞았다. 대전여성장애인연대에서 5인 공저의 무장애 대전 여행이라는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 편의시설 조사 등에 전념하느라 그토록 고대했던 붕붕이(슬로프 차량의 애칭)를 1년 남짓 세워둬야만 했다.

5월 8일에 우리 것이 되었기에 보석 이름을 따서 오팔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운전해 줄 남편과 합의만 된다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수단이자 목적이 될 수 있는 결정체였다.

우여곡절 끝에 책은 출간되었고, 남이 사주는 책이라기보단 엮은이들만 보람을 맛본 책일지언정 활자와 사진에 들인 공 때문에 자부심만은 헐값에 팔 수 없었다. 더는 어떤 이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종이상자 안에서 먼지 옷을 뒤집어쓴 몇십 권의 책이 패잔병처럼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차마 버릴 수는 없다.

코로나에 팬데믹과 포스트, 위드와 엔데믹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동안 우리의 오팔이는 안전하고, 든든한 여행길을 만들어 주었다. 비접촉과 비대면, 거리두기가 저절로 지켜지는 슬로프 차 안에서 내 비록 몸은 붙박이장처럼 차량 뒷자리에 묶여 이동하지만, 내 마음의 자유와 행복만큼은 묶이지 않았다.

이젠 무엇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여행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작년 겨울에 갑상선암 수술을 한 남편의 체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기존의 수동식 슬로프를 접었다 펴는 동작이 그의 어깨에 무리가 되어서 둘만의 여행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매일 갑상선약을 복용하며 차츰 일상을 추스르고 있지만, 예전 같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요즘은 짧은 여행을 틈틈이 즐기는 중이다.

올봄에는 충북 보은의 법주사와 속리산 테마파크를 찾았었다. 여느 여행객들처럼 관광지 부근 식당가의 야외 입식 테이블에 앉아 산나물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운동화 끈을 고쳐 묶은 다음 산행을 시작했다.

충북과 경북이 바위산으로 나눠 가진 속리산국립공원의 세조길 자연관찰로의 우툴두툴한 야자 매트 길을 전동휠체어로 걸어보았다. 법주사 입구 바위에 새겨진 부처를 지나 사찰 내에서 만난 금동미륵대불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불자가 아니어도 경험해 보고 싶은 템플스테이는 아쉽게도 관광약자의 것이 아니지만, 사찰이 주는 고즈넉함과 편안함을 만끽하고 싶은 욕구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속리산 테마파크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전동휠체어를 타고 모노레일 탑승이 가능했다. 집라인이나 스카이바이크까지야 바라지도 않지만, 모노레일로 목탁봉 전망대까지 오르내린다니 설레고 흥분되었다.

매표소 옆에 잘생긴 장애인주차장 두 면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턱 있는 유리부스 속 모노레일 입장권 발급기를 보자 입꼬리가 쳐지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입장권 발급기와 나. 대부분의 관광지엔 그런 것들이 즐비하다. 비워져야 할 곳엔 엉뚱한 것이 채워져 있고, 채워져 있어야 할 곳은 어처구니없이 비어 있다.

탑승 전 관광가이드 팀장에게 지금까지 사고 없이 모노레일이 운행되었는지 넌지시 물었더니 만들어진 3년 동안 무사고 운행 중이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혹시 오늘이 그 무사고를 깨는 날은 아니겠죠?” 농처럼 내뱉은 말이 나중에 불씨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목탁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세상이 부처를 품고 있는 듯도 했다. 마치 나와 활동지원사처럼, 적정 거리에서 1호선과 2호선으로 연결된 모노레일에 몸을 실었다.

여행지에 가면 십중팔구 남편은 관광지 주변에서 기다리고, 나는 대형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시식하듯 전동휠체어로 둘러보다가 기다리는 이에게로 잰걸음을 치곤 한다.

이번에 나는 남편에게 모노레일을 함께 타자고 꼬드겼다. 목발로 걸어도 머지않은 거리여선지 남편도 못 이기는 척 모노레일에 몸을 실었다.

꽤 가파른 산을 거슬러 오르는 모노레일로 목탁봉 전망대에 올랐다. 정상에서의 경관을 즐기며 마신 아이스커피에 땀도 마르고, 기분도 시원했다. 저만치 법주사의 황금빛 부처상의 상반신도 어렴풋이 보였다. 내친김에 말티재 전망대도 들러보고자 하산행 모노레일에 몸을 실었다. 여흥으로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데, 멈칫멈칫한다 싶던 모노레일이 어느 순간 서버렸다. 한 몸처럼 연결돼 있던 두 칸짜리 모노레일이 동시에 멈춰 선 것이다. 앞선 1호 칸에 탔던 가족 단위 관광객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그중에 있던 임산부가 떠올랐다.

1호 칸에 탑승하려다가 그 가족원들이 함께 타는 것을 보고, 우리는 2호 칸에 탔었다. 1호 칸의 가족이 여차저차 무사히 하차한 것을 알게 되자, 2호 칸을 선택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 모노레일이 45도 정도 기울어져 멈춘 상태라서 걷지 못하는 나로선 비상계단으로 하차할 수도 없었다. 목발 사용자인 남편도 관광 가이드의 안내와 도움으로 바닥에서 기다시피 하차하고, 활동지원사 역시 일단 하차하였다. 이제 나와 안내원만 남았는데, 갑자기 그조차 상황을 살피겠다며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그제까지 말짱했던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우왕좌왕하던 현장의 직원들은 결국 119를 불렀고, 남녀 구급대원이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와서 다친 데가 없는지를 묻더니 나를 업어서 구출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다리가 구축된 상태이고, 자칫 다칠 수가 있으니 어떻게든지 휠체어 채로 하차할 수 있게 기계를 손봐달라고 요구하였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모노레일 안내원으로 부임한 지 일주일 정도 됐다는 나이 많은 팀장은 부채를 찾아 들고 와서 내게 연신 미안하다면서 부채질을 해주었다.

팀장님이 내게 미안할 일이냐고 답하면서도 빨리 이 모노레일에서 무사히 하차하면 좋겠다고 하니 자신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내가 만약 교인이라면 이 순간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기도했고, 기술자들이 기계를 손봐서 기울어진 모노레일의 균형을 잡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무사히 하차하였다. 내리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모노레일 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등과 무릎의 통증이 느껴졌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하여 흘려보낸 내 시간과 심적 불안감에 대해 누가 보상을 해주냐는 내 말에 모노레일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잠깐 상의하나 싶더니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노라니 먼저 하차해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봉투 받지 마.”

나도 그럴 생각이었으나, 추후 어딘가 아픈 데가 나타나면 연락하리라 생각했다. 봉투를 사양하고, 직원 대상의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나를 불러달라면서 테마파크 대표에게 명함을 주고 차에 몸을 실었다.

귀가해서 남편에게 들은 말은 좀 충격적이었다. 봉투에 얼마를 넣어 줄 것이냐를 상의하던 중 한 전기 관계자가 “10만 원만 줘라. 버릇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남편이 들었다고 했다. 버릇될 게 뭘까. 비슷한 상황의 재발을 예상해서 보상비를 하향 조정해 두려는 꼼수 정도로 여겨졌다.

기분 좋은 여행길에서 예기찮은 사고로 공중에 1시간가량 매달려 있었던 관광객에게 그게 할 말인지 쫓아가서 따지고 싶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교육 의뢰는커녕 안부 전화조차 없어서 내심 괘씸하다.

한편 휠체어 사용 여행객과의 그 경험을 통하여 모노레일 점검에 힘쓰기보다는 탑승 가능한 중량과 안전을 이유 삼아 휠체어 탑승에 제한을 두지는 않을지 우려되었다. 관광지는 꼼수를 부릴 것이 아니라, 만반의 안전을 챙겨야 할 것이다.

어느 해보다 무더웠던 여름을 견뎌내느라 연락해 보지 못했는데, 올해 안에 명함을 건넨 사람에게 전화해 볼까 한다.

늘 비어 있지도, 채워있지도 않은 우리 삶, 여행도 그 같으리. 짬짬이 남편 혹은 벗들과의 여행을 이어가고자 한다. 느린 여행자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닌, 무엇이라도 하는 시간을 채워갈 생각이다.

말티재 전망대는 다음에 꼭 가보기로 한다. 남편은 두 번 다시 속리산 테마파크 모노레일을 타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다시 목탁봉 전망대에 오를 생각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