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장애계소식 정보&뉴스

정보&뉴스

정보&뉴스
게시글 검색
부모의 ‘사랑과 칭찬의 힘’ 보다 강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장사연 조회수:188 14.63.22.20
2025-02-13 16:10:33

 

부모의 ‘사랑과 칭찬의 힘’ 보다 강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더 이상 편리함과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 아침 일찍 예고도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담임 교사의 문자와 함께 찾아온 이 떨림은 ‘설렘’이 아닌 반갑지 않은 손님, ‘불안’이었다. 손님의 이름 탓에 내 심장은 벌써 100m 달리기가 시작됐다.

‘원장님, 양예준 엄마입니다. 바쁘실 텐데 아침 시간 죄송해요. 영상 확인하시면 답변 꼭 부탁드립니다.’ 오늘 아이가 어린이집 등원 1시간 만에 담임 교사로부터 온 영상 메시지를 병원장님께 보내는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아들의 하원 시간까지 확인 [숫자 1]이 사라지기를 온 마음으로 기도했다.

7세 두 번 살이가 시작된 해도 어김없이 봄꽃은 날렸다. 그 무렵 매일 아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루는 발달 장애 선배 맘이 추천한 특수아동용 ‘자음 카드 한글학습법’이 있다는 입소문에 잠시 귀가 팔랑거렸지만, 다행히 내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다. 비록 아이가 장애가 있다 해도 내 어린 시절 스스로 한글의 소리음이 완성되는 비법을 터득했을 때! 그 감칠맛과 재미를 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으니, 그 레시피는 대략 이러했다.

예준이는 치료사들이 흔히 강화 물로 사용하는 젤리, 사탕도 예민한 감각 때문에 절대 거부하는 아이였고, 짧은 집중력까지 더해 착석은 어림도 없었다. 이 무렵 우리 집에 관찰용 몰래카메라가 있었다면 아마도 한글의 소리 음가를 읽어내는 나의 코믹연기력은 연예대상 신인상은 받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칭찬과 사랑의 미소’ 그것이 나만의 비법이자 마법의 레시피 였으니 말이다.

부모의 사랑과 칭찬의 힘은 강하다. © 픽사베이
부모의 사랑과 칭찬의 힘은 강하다. © 픽사베이

아무리 입소문이 자자한 인지 치료사, 한글학습 전문가라 해도 장애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그들과는 견줄 수 없는 ‘온 우주요, 세상 전부’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그런 부모의 ‘사랑과 칭찬의 힘’보다 강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의 눈빛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약간의 불안과 엄마의 칭찬이 고픈 눈빛 그 중간 어디쯤 있는 듯 보였다. 손에 쥔 연필을 흔드는 상동 행동과 혼잣말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칭찬이 담긴 내 반응을 보고 싶어 날이 갈수록 착석시간이 길어졌고, 지금도 그 무렵 예준이가 내게 보내왔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편리함과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예준 언니, 장애아이고 남자아인데 글씨체가 뭐가 중요해요! 그냥, 한글 읽고 받아 쓰면 됐지!’라고 말하는 발달센터 학부형의 말이 무더운 바람과 함께 귓가를 유혹했다. 그러나 ‘글씨는 곧, 두 번째 그 사람의 얼굴이다’. 라는 어린 시절 친정엄마의 말씀 덕분에 단단했던 내 글씨체가 나를 한 번 더 붙잡았고 예준이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지금도 아들의 미술작품과 글씨체를 환히 비추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칭찬과 사랑의 미소가 나만의 레시피였다. ©픽사베이
칭찬과 사랑의 미소가 나만의 레시피였다. ©픽사베이

나는 아들과 함께 쓰기를 결심했다. 결코, 네가 혼자가 아니라고 몸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아들의 연필을 쥔 손은 거북이는커녕 달팽이 속도였지만 보채지 않았다. 매일 그 덕분에 나는 아들 옆에서 육아 일기 쓰기가 시작됐고 예준이의 글씨가 한석봉도 울고 갈 만큼 하루가 다르게 정교해지자, 소근육 발달은 기본 ‘선물 옵션’으로 찾아왔다. 그랬다. 친정엄마의 교육 레시피는 치료사보다 언제나 옳았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으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이와 길을 갈 때도 자동차 번호판과 간판에 보이는 전화번호로 ‘수’를 익히고, 화장실 변기에 앉은 아들 손에 구구단 멜로디 북을 쥐여주고 따라 하는 작은 입 모양을 보고 있자니, 아들의 구린내도 향수처럼 느껴졌다. 잠들기 전 벽에 붙인 아날로그 시계 판을 같이 읽어야 잠자리에 들었고, 아들 귓속에 구구단 송을 자장가 삼아 부르는 예준 엄마의 낮과 밤은 그렇게 계속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셨다. 예준이는 그렇게 한글을 떼고 구구단도 읽는가 하면 아날로그 시계까지 다행히 읽기 시작했다. 하루는 재래시장을 지나며 수박과 참외 향이 코끝을 진동하고, 흰머리가 제법 미용실을 갈 때라고 여름이 신호를 보내왔지만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들 바라기’ 재미에 빠져, 염색할 시간도 잊는 날이 길어졌다.

“여보세요, 예준이 어머님, 저, 병원장입니다. 영상 확인했습니다. 그러게요. 지금 손이 제법 떨리는데…. 우선 내일 내원해 주시고 약을 조절해 보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녁 약은 일단 중단하세요.” 1분도 채 안 되는 전화기 넘어 병원장님의 침착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내 심장과 손은 응급 처치를 받은 듯 제 속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세상에 좋은 것이 있다면 내 새끼 눈과 머릿속, 입속에 하나라도 더 심어주고 넣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던가! 보약만 주어도 모자랄 터…. 8월의 허리쯤 왔을까, 초등 입학을 위한 학습 준비를 하면서도 예준이의 상동 행동인 연필 흔들기, 혼잣말은 좀처럼 졸업할 기세를 보이지 않았고 소아정신과 병원장님도 고심 끝에 학교생활을 위한 약물치료를 조심스레 권하셨다.

우리 부부는 선배 부모들의 다양한 경험담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성경처럼 붙잡고, 예준이의 약물치료는 불가피하게 시작되었다. 치료가 시작된 이후부터 온종일 아이 컨디션을 살피며 약물 반응을 시간별로 메모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린이집 알림장에 아이의 변화를 일기처럼 기록하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신생아 수유 일지 쓰는 엄마 같았다.

더 이상 편리함과 타협하지 않기로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이 ‘약물치료’ 하나로 무너진 것만 같아 늦은 밤, 하늘에 올리는 기도시간도 길어졌다.

“예준이 어머니, 병원장님과는 통화하신 거죠? 예준이 오늘 미술 시간에 테이프 붙이기를 하는데 약물 부작용 때문인지 손이 제법 떨리길래 바로 촬영한 영상인데 많이 놀라셨죠? 그리고, 어머니 저…. 죄송하지만, 어머님께서 이렇게 매번 메모해 주시는 글, 제가 바빠서 번번이 답글 적어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원지도하는 어린이집 담임 교사의 말이 영상을 보고 놀란 가슴 탓에 하울링처럼 들렸다.

“저…. 선생님, 바쁘실 텐데 영상 촬영해주셔서 감사해요. 다행히 의사 선생님께서 바로 확인하셔서 내일 뵙기로 했어요. 그리고…. 알림장 일기는 예준이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말하는 내용이에요. 기억나는 상황 문장과 단어가 전부이지만, 아이의 기억력과 언어발달 변화 정도를 기록해 보고 싶어서 하는 저만의 메모이니, 절대 답글 쓰셔야 한다는 부담 없으셨으면 해요.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혹시 부담되셨다면 죄송해요.”

가을의 끝 무렵이었을까? 아들의 알림장에 빨간 동그라미가 조금씩 때론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답글은 아니었지만, 예준이의 어린이집 이야기 전달 내용이 맞는 날은 그 문장에 동그라미가 되어있었다. 담임선생님도 하원 할 때 ‘어머니, 이제는 제가 궁금해서 일부러 꺼내 봐요.’라는 미소 띤 목소리로 일기 속의 예준이의 변화되는 전달능력에 놀라워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의 변화가 단지 약물치료 덕분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습관’이라는 이름은 우리 모자를 무섭게 변화시켰다. 지금도 나는 예준이와 하루를 마감하기 전 오늘의 이야기를 시간 퍼즐처럼 대화로 맞춰보고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헌 지폐가 모이면 부푸는 것처럼 내 아들이 엄마 눈을 보고 말하는 짧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기억들이 모여서 ‘어휘’가 늘 것이고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언제고 내가 없는 세상 속에서 홀로 당당히 서리라는 내 굳은 믿음은 지금도 나를 일기장으로 이끌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자연스레 숨 쉬고, 걷고, 뛰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위대하 것인지... 비로소 아들의 눈빛을 통해 다시 깨닫고 배우고 있다. 좀 서툴고 느리면 어떤가? 방향이 중요할 뿐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예준이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신의 하루라는 여행 속에 나를 초대하고 함께 추억을 기록하는 습관을 아낌없이 내게 선물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오히려 아이도 엄마도 서로 힘들게 대화하려는 게 서로 고문하는 거 아닌가요? 자폐처럼 루틴 행동 하나를 더 추가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그러나 나는 아들을 통해 배웠다. 그들만의 상동 행동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자기 조절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며 역으로 생각하면 쉽게 포기를 모르는 엄청난 ‘인내심’이란 것을! 나의 일기 쓰기는 자폐인의 상동 행동을 따라 하며 배운 멋진 습관이며 인내요, 삶의 힘이다.

나는 예준 엄마에게 명령한다. ‘발달장애인의 표현 언어와 지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얕은 생각으로 네 아들의 한계를 만들지 말 것이며 하늘과 한 약속의 초심을 잊지 말라고….’ 나는 오늘도 이 어린 철학자이자 피터팬과 마주 앉는, 이 한 시간 남짓의 ‘행복 대화 시간’은 매일 시나브로 쌓여간다.

‘네 들어오세요. 예준이 어머님’ 병원장님의 목소리 너머로 안경이 보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