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솟대문학상은 원로시인 故 구상 선생님이 기증 하신 2억 원의 이자 수익으로 마련되는 상금 300만 원과 개인시집 출간(도서출판 연인M&B 후원)이라는 부상이 있다.
김묘재 시인(제34회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은 본명이 윤정희(여, 지체장애, 61세)이다. 심사 때 필명으로 심사를 보았기 때문에 언어의 섬세함이 여자 같기도 하고, 파격적인 단어 사용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었다. 선정 후 약력을 보니 경력이 너무나 다양하여 다시 한번 놀랐다.
김 시인은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졸업 후 대학원에서 영문학 전공, 그리고 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장애인의상연구소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며 다수의 장애인패션쇼를 기획하여 개최하였다. 더욱 엉뚱한 경력은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 활동을 했고, 현재도 장애인역도 부산 대표로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수차례 메달을 딴 역도 선수라는 것이다.
문학 경력으로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2016년 동화, 2022년 수필 입선이 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인데 단숨에 구상솟대문학상을 거머쥔 실력자이다.
‘장애는 세상을 새롭게 그려 낼 수 있는 자산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글이 되기까지 먼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단단한 다짐에서 그녀가 얼마나 문학을 갈망하는지 알 수 있다.
데드라인(Deadline)
김묘재
고장난 나를 고쳐 주세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손사래보다 먼저 설레발친 사고뭉치
엉킨 타래를 풀지 못해 굴러다니는 뭉태기를 엮지 못해
말로 쏜 화살, 글로 쓴 죄돌고 돌아 택배상자에 꽂힙니다 키요틴이 배달되었군요
어려서 부모님을 잃구요 언니와 계모에게 받은 구박 * 은 아무도 읽지 않을 클리셰
달콤한 무리, 무리들과 쌉쌀하게 사바 사바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는데요
혼자서는 무리 무리 아무리
필사해도 피는 돌지 않습니다 사바 사바 분신 사바 **
칼춤 추며 달려오는 망나니 아침 이슬로 사라지고 싶지 않아 깨진 유리구두를 꼭 쥐어 보지만 맨몸만 넘을 수 있는 선
마무리가 무리 무리 죽음도 연습이 필요해 수수리 사바하
*1980, 90년대 어린 여자아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1980, 90년대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했던 놀이의 일종. 초자연적인 존재를 불러 소원을 들어 달라는 의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승하 교수(구상솟대문학상심사위원회 위원장)는 수상자의 작품에 ‘유머 감각, 즉 해학성은 김 시인이 가진 아주 특별한 재능이 아닌가 한다. 시적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좋고, 눙치고 어루만지고 띄우고 꿀밤을 먹이는 언어 조율 능력도 아주 우수하다’는 심사평을 남겼다.
<데드라인(Deadline)>(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작)은 마감 시간을 뜻하는 용어로 시인은 인생의 절박한 순간들을 유쾌하게 풀어놓았다. 사람의 목을 자동으로 자르는 사형기계인 키요틴, 망나니 칼춤 등 절체절 명의 위기 속에서 계속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중얼거리며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소망을 버리지 못하는 그녀는 유머를 잃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로 독자들에게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시인은 확실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아서 앞으로 무궁무진한 시어(詩語)를술술 뽑아낼 수 있는 언어의 마술사이다.
윤정희는 누구인가
윤정희는 1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3세 때 찾아온 소아마비로 가정에서 과보호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가슴부터 발바닥까지 보조기를 착용하고 걷는 연습을 하였는데 어린 정희는 그것이 만화에서 본 사형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조기를 착용하면 바로 슬픈 얼굴이 되었다.
동네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소리를 지를 만큼 놀라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딸의 보조기를 벗겨 버렸다.
두 번째 큰 반항은 대학 입시였다. 부모님은 대학 진학을 약대로 하기를 원했다. 아빠 거래처 사장님 자녀 중에 장애인이 있었는데 약대에 가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정보에 장애인은 무조건 약대에 가야 먹고산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윤정희는 의상학과를 고집했다.
자유분방한 성격 덕분에 윤정희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경험 속에서 상처도 받았 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윤정희가 아닌 필명 김묘재로 살고 싶었다. 시를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김묘재는 2024년 구상솟대문학상의 주인공이 되면서 시인으로서 날개를 달았다.
당신의 정체성은
어릴 때 꿈이 디자이너였어요. 저는 제가 천재인 줄 알았죠. 공책 뒷장에 연필을 들고 인형을 그리기만 하면 저도 모르는 이야기가 막 쏟아졌어요. 표정과 의상의 디테일이 독보적이었다고나 할까?
주변에 친구들이 겹겹이 에워싸서 구경 하다가 그림 하나 얻어 가는 경쟁이 붙을 정도로… 제가 의상학과를 간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곧 패션계를 평정하겠구 나!’라고 했는데, 막상 대학을 가 보니, 패션은 산업이고 학과는 산업의 역군을 키우는 곳이었어요. 졸업하고 나면 디자 이너 보조하면서 바닥부터 올라가야 하더라구요. 저한테는 당연히 맞지 않았어 요. 솔직히 자신이 없었죠.
그때의 결핍감 때문인지, 방송대, 사이버대, 그리고 일반대학원에서 각각 다른 전공을 했어요. 학사가 세 개, 대학원 수료가 2개, 석사학위는 상담심리학으로 받았죠. 지금 장애학 박사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아직까지 진로 고민 중입니다.
직업에 대해 물어보면 영어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호주 어학연수 다녀 온 후에 대학가에서 토익 강사를 했는데, 나름 인기가 있었어요. 강사는 실력 못지않게 외모가 중요한데 장애인이라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지만, 그래도 의상학과를 나와서 코디의 힘으로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른 즉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옷을 구사 했어요. 그때는 장애인이 옷을 잘 입고 외모를 가꾼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제가 재능기부로 다른 장애인들과 코디클럽 같은 걸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가면 어떨까 생각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국장애인의상연구소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부대 행사로 장애인패션쇼가 기획되어 있다는 거예요. 바로 소장님을 만났어요. 운명처럼 모델 겸 디자인 실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죠. 버렸던 전공을 심폐소생한 기분이랄까. 이러려고 내가 의상학과에 갔구나 싶었어요. 제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중증 장애인들이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보고 참 뿌듯했어요. 이렇게 해서 저는 세계 최초 장애인패션쇼에 스태프로 참여했답니다.
당신은 스포츠맨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