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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미쳐야 어딘가에 미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나를 위로하기로 했다
장사연 조회수:179 14.63.22.20
2025-06-18 14:03:02

사람은 미쳐야 어딘가에 미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나를 위로하기로 했     ‘괜찮아, 넌,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 나는 나를 이렇게 위로하기로 했다. ©픽사베이 

     ‘괜찮아, 넌,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 나는 나를 이렇게 위로하기로 했다. ©픽사베이 

【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내가 나에게 물었다.

“왜 공모전에 집중하기 시작했어?”

“아들을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랄까? 무엇보다 아들의 재능을 찾아주고 싶었어. 나는 엄마니까, 그리고 약물치료 없이도 보란 듯이 잘 키울 수 있다는 세상을 향한 내 도전과 승부? 뭐, 그런 거였지.

이제 30~40대의 젊은 장윤경은 사라졌지만, 후회는 없어. 그땐 그 재미라도 없었으면 하루하루 살아내기 힘들었거든. 나는 뭔가 하나를 깊게 파면 뭐라도 나온다는 걸 믿었어. 장윤경은 그런 거 좋아하니까. 뭐가 되었던 미친 듯이 빠져보고 그렇게 해보고 싶었지. 이건 내가 아들에게 배운 거야. 어느 정도는 말이야, 사람은 미쳐야 어딘가에 미칠 수 있다? 안 그래, 예준 엄마? 나는 다시 30~40대로 돌아가도, 청춘의 장윤경은 예준이 엄마로 공모전에 미쳐서 살 거야.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예준이 엄마 하려면 웃프지만 지금의 예준 아빠를 다시 만나야겠지?”

나는 나를 이렇게 안아주기로 했다.

‘괜찮아, 넌,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 내 손은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나를 위한 엷은 미소가 입가에 번진 덕분인지 마음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2019년 어린이날.

나는 예준이와 어린이날기념 박물관 사생대회에 참가했다. 그림대회는 핑계였고, 그저 아이와 어린이날 어디든 가서 추억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 극성 엄마인 나는 새벽에 일어나 3단 도시락에 돗자리, 접이식 간이 책상까지 한 짐 챙겨 피난이라도 떠날 듯 미술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 주제는 박물관 내에서 관람 후 자신이 인상 깊게 본 것을 그리기다. 예준이는 난생처음 미술대회에 참가했고 김밥을 먹어가며 박물관 복도에 있는 고래 조형물을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때 깨달았다. 외부라는 낯선 곳에서도 미술만큼은 집중력이 가능하구나. 이게 가능하구나. 그러나 환경 그림대회, 박물관 그림대회는 어느 정도 전략도 필요하구나! 라는 걸. 아쉽게도 예준이는 첫 대회 수상자 명단에 없었다.

나는 생각 끝에 미술대회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 대회 참가자의 낙선 그림의 반환 여부를 문의했다. 그때 마침 예준이가 등수 외 아차상 명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박물관 내 4층 로비에 아차상 여섯 명의 작품도 1년간 로비에 전시해 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덕분에 예준이의 작품이 난생처음으로 1년간 공공기관 전시가 시작됐다.

2019년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초등2학년시절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19년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초등2학년시절  양예준 작가. ©장윤경 

그날을 시작으로 아들은 매달 한두 번은 자신의 작품 안부를 확인하러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다. 누가 보면 마치 대상 수상자인가? 싶을 만큼 예준이는 박물관에 오자마자 꼭 4층부터 달려가 작품 앞에서 인증 사진 찍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수상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 키워주기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아들의 가능성을 보았다.

어쩌면 아들의 자신감 넘치는 그 표정을 내가 만날 보고 싶었던 걸까?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공모전에 도전해 보고 싶어  미술학원도 다시금 기웃대 보고 방문 미술도 신청해 보았다. 그러나 학원 단체 미술 공모전에서 아들은 무조건 제외하는 차별을 경험했다. ‘아, 학원 미술 세계의 벽이 이렇게 높은 건가?’라고 절망하는 순간, 내게 용기를 선물한 이가 있었다.

“예준 언니, 뭐가 그렇게 심각하세요? 제가 이래 봬도 산업디자인 전공자라 꿀팁하나 알려드려요? 혼자서도 미술 공모전 도전 가능해요.”

“정말? 그런 앱이 있어?”

예준이와 같은 발달센터 치료를 다니는 한 엄마가 내게 다가와 미술대회 낙선 넋두리를 하자 고맙게도 정보를 건네는 게 아닌가.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밤마다 나만의 방식으로 모든 전국 공모전 사이트를 비교 분석하기 시작했다. 미대 출신도 아닌 데다, 공모전 요령을 지도해줄 스승도 없었기에 하루에 2시간은 기본이요, 아이가 잠든 시간부터 새벽 2시가 훌쩍 넘도록 늘 컴퓨터와 기사 검색하는 일이 매일 밤 일상이 되었다.

그래, 내가 전공한 현대 시문학도 ‘예술’ 분야이니까 뭔가 미술대회 공모전이라는 것도 문학과 교집합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적 생각에 대회별 날짜와 성격, 상의 훈격까지 분석해서 매일 리스트를 만들고 공모전 전용 체크 달력도 엄마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중심엔 항상 아들의 즐거움이 더 먼저였다. 대회의 수상이 목적이 아니라 평소 그린 것들이 얼마나 귀한 보물인지 세상에 평가받고 보여주고 싶었다.

미술 공모전은 원본 심사를 위한 제출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원본 그림을 손상 없도록 납작하게 포장한 뒤 테이프를 자르고 상자에 붙이는 과정에서 예준이의 소근육도 발달하는가 하면 등기 우편 결제 과정까지…. 우체국을 찾은 풍경 속에서 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자 작품 상자 포장요령까지 알려주시며 우리 모자를 응원하시는 동네 우체국장님도 알게 됐다.

내 손은 늘 공모전 상자 포장하다 칼에 베이거나 찢겨있었지만, 우체국에서 아들과 함께 대기표를 뽑는 그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내 아들의 정성이 세상 속을 향해 날개를 다는 순간이었고, 때로는 내가 펜팔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통 앞을 서성이던 19살이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회 수상자 발표날이면 로또 당첨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렜고, 수상자 명단에 장려상 혹은 특선이라도 발표된 날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낙선된 그림을 찾으러 아들과 지하철을 타고 그림을 찾으러 여행 아닌 여행을 가는 날도 그 자체로 좋았다.

나는 지금도 내게 70여개의 공모전 수상 비결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1. 욕심을 비우고 아이가 미술을 즐기고 있는지 관찰하자. 2. 부모가 개입하지 말고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으니 기록을 저장하자. 3. 자신에게 질문하라,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이끌고 있지 않은가! 라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내 경험담이 자칫 자랑 즘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나는 진심을 눌러 담아 말한다. 나와 예준이는 대회에 크게 기대한 것이 없었고 수상결과보다 그저 약물치료 필요 없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기에 그 과정만을 철저히 즐겼다고.

생각해보라,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가 미술대회 수상 좀 못 하면 또 어떠한가! 아들이 상동행인 손 떨림이 이젠 미술로 연결되니 이미 그걸로 충분했고, 나는 아이와 함께 집중하고 놀아줄 그 무엇이 필요했을 뿐이다.

인생 계획 속에 자식 농사라는 것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결핍을 아들의 공모전 수상으로 채우려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미술대회 수상이 목적이고 중요했다면 그건 내 안에 채워지지 결핍이 불러온 욕심일 것이요 그 끝은 화를 불러왔을 것이다.

사춘기를 보내는 지금의 아들이 혹시라도 ‘엄마, 나 이제 그림 안 그릴 거야, 미술이 싫어졌어요!’라는 말로 나를 당황하게 하는 날이 온다 해도, “이제 다른 것도 해보고 싶은 거야?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해봐!’라고 대답해줄 준비가 되어있다.

‘명심하자, 철저히 아이의 인생이다.’

나는 멀리 볼 것도 없었다. 비장애인 나부터도 부모님 기대치 만큼 자라주지 못했는데 장애가 있는 내 아들이 치료목적으로 시작한 엄마표 미술놀이에 부모에게 행복 그 이상을 선물해 주었으니 그 너머를 내가 바란다면 도둑심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랬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고 내 마음 안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받는 상처는 그리 많지 않다. 무섭게도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준다. 자녀, 부부, 부모님이란 사람들이 때론 내 자신감과 자존감에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 생채기는 더 깊고 힘들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나 자신과 동일시하며 상대에게 ‘너에게 기대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예상답안과 결과물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너에게 실망했다’라는 말과 행동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들을 통해 배운 건 ‘기대 비움’이었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라! 내 아이는 내 것이 아닌 하늘이 잠시 내게 맡겨둔 하늘의 자녀이다. 내 아들도, 아들의 오래된 버전이자 영원한 내 편일 줄 알고 결혼한 남편도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그야말로 ‘남의 편’이다!  이 또한 내가 우리 집 남자들과 15년 동거 끝에 깨달은 지혜다. 결국, 내 마음과 몸이 스스로 바뀌고 움직이자 내가 편했다!

나는 예준이와 함께 미술 세계에 빠져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부터 수상자 발표날을 기다리기까지의 이 모든 과정을 즐거운 놀이요, 엄마표 치료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예준이의 상동 행동이 미술 안에서 예술로 바뀌는 순간이 매일 이어졌다. 더는 손 흔들림 무의미인 상동 행동이 아닌 나와 아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이었기에 약물치료보다 미술대회 수상결과보다 더한 보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유레카!’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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