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엄마는 오늘도 소금땅에 물 뿌리러 간다(저자 최유진, 출판 홍성사, 발행 2016년 5월 11일)’라는 제목을 보고 소금땅에 물을 뿌리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거기에다가 ‘오늘도’라는 말이 있으니 매일 어디 나가는 가 보다 싶다. 장애아를 둔 부모가 매일 나간다면 복지나 권리 신장을 위해 시위를 하러 나가는 엄마인가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왜 소금땅인지 알려주지 않아 궁금했는데, 마지막 부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스라엘 엔게디 키부츠에서 염도가 높은 땅에 몇 년 동안 물을 대어 농장을 만드는 이야기를 한다. 조건이 맞지 않지만 많은 시간 기다림과 노력으로 환경을 바꾼다는 이야기다. 자폐성 아들의 성장과 성숙, 자립과 사회적 관계 등을 위해 노력함을 나타낸 말이었다.
최유진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일을 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풍부한 표현력과 문학과 미학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며, 신앙인으로서 장애를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그려낸다. 교향곡 ‘운명’을 들으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바이올린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름’과 ‘더불어 삶’ 그리고 ‘소통’에 관한 것이다. 아이의 장애와 맞닥뜨리면서 사랑에 대하여, 이웃과 세상에 대하여 조금씩 눈 떠 가는 이야기다. 고난과 아픔은 삶과 사랑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라고 결론짓는 작가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애벌레의 삶과 고치의 삶, 나비의 삶으로 성장해 왔다. 아들의 장애로 엄마도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었고, 가족으로서 장애를 경험한다. 그리고 아들과 같이 성장과정을 겪는다.
이 책은 이러한 성장을 이야기한다. 소제목마다 명언과 같은 느낌이나 주장을 아름다운 한 문장으로 만들어 소제목처럼 붙여 문가적 편집술을 보여준다.
애벌레의 삶이란 제목에서 아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아들은 맘에 안 드는 말이라도 하면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푸드코트에 가면 자기만의 자리가 있어 다른 자리에 앉지 않는다. 집에서도 식탁 등(전등)은 밤새도록 켜져 있어야 하고, 남을 때리는 것은 괜찮지만 남이 자기를 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항상 귀를 틀어막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예쁨 받을 자원을 많이 가지지 못한 아이이기에 더욱 손을 내밀어 사랑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26개월 된 아들 요섭이 상호작용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으로 아득함과 아픔을 느꼈다. 동생의 대학 졸업식장에서 귀를 막고 울부짖으며 우왕자왕하는 요섭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집에 오던 중 갑자기 혼자 집으로 뛰어가 버린 아들로 인해 잃어버린 줄 알고 소동이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는 계단을 어렵사리 한 단 올라서야 그 너머가 보인다고 말한다. 자폐를 알아가는 것은 일일이 이런 사례들을 겪으면서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 아픔을 통한 배움이 애벌레의 생활이었다.
발달장애아에게 치료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병에 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는 언어 이해와 표현능력이 부족한 언어성 장애를 가지는 경우와 인지와 지능 전반이 저하되는 지적장애,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는 전반적 발달장애(자폐성)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자폐성 장애의 판단 기준은 눈맞춤, 표정, 몸짓 등 비언어적 행동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 친구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 자신이 흥미를 가진 물건을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 언어발달이 늦은 경우, 문장 구성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 특정 언어를 반복하는 경우, 상상놀이나 모방놀이를 하지 않는 경우, 하나의 흥미에 사로잡히는 경우, 집착으로 융통성이 낮은 경우, 상동행동을 하는 경우 등이다.
자폐성 장애의 원인은 환경적 원인보다는 생물학적 원인으로 뇌의 능력의 문제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 뇌신경성 장애라 부르기도 한다. 자폐성 장애아는 일상의 반복적 궤도 안에서 안정과 평안함을 느낀다. 아들 요섭은 글을 화면을 통해 배워서 말을 갖고 놀 뿐 의사소통에는 잘 사용하지 못한다. 말이 트이지 않아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고, 단체에는 룰이 있음도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는 이러한 행동에 대한 심정을 돛대도 아니 달고 가는 것과 같다며 소외당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었음을 고백한다. 학교에서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교사가 아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방치의 결과라 느끼며 이름이라도 제대로 불러 달라고 말한다. 레미제라블에서 테나르디에가 코제트를 6년도 넘게 기르면서 이름도 제대로 몰랐던 사례를 들고 있다.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학생 수가 늘어나자 교실이 부족하다며 특수학급 수를 줄이려는 학교에서 장애아로 인해 다른 아이가 피해를 보는 것이 맞느냐며 남의 자식도 중요하므로 더 이상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사회의 연약함을 부인하고 책무를 회피한다고 그것들과 결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요섭은 6학년이 되어서야 내 것이 있으면 남의 것도 있다는 소유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규칙을 몰라 야단치기도 하였는데 매를 들었더니 엄마가 폭력을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도벽이나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닌지 얼마나 마음 상해 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엄마가 폭력을 한다는 과잉행동은 얼마나 쉽게 배우는지 모를 일이다. 누나 돈을 빼앗고는 오히려 경찰에 신고하고는 자신이 신고하지 않은 듯 시치미를 떼는 이야기 등 매일 시트콤을 하는 것 같은 가족소동 이야기에서 사건의 진행과 결국 알게 되는 것 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일단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요섭의 사회성 결여를 보여준다.
자폐성 장애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도 하지만 편식이 심한 경우가 많다. 골고루 먹이려는 엄마에게 자기를 미워한다며 자리를 피한다. 감각 기능과 신경계통 기능의 장애를 지닌 자폐성 장애인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감각이 민감하여 증폭된 행동을 보인다. 자폐성 장애아는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데, 어머니부터 통합해 보자고 학부모회에 가입했더니 주로 진학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는 회의에 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배려를 받고 호의를 가장한 기피는 배려가 아님을 적고 있다.
요섭이 사춘기가 되자, ‘컴퓨터 할 테니 비켜 주세요’라고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자 억지로 시키지 말라고 했다. 언제 억지로 시켰느냐고 하자 ‘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욕 안 했다고 하자 협박하지 말라고 요섭이 말했다. 자기방어와 간섭이 싫은 기분에 상황을 마음대로 해석한다. 결국 용서하고 모른 척해 주어야 하는 쪽은 엄마이다. 정말 속이 상하면 엄마는 혼자 거리를 걷기도 하면서 삭여야 했다.
일방적 행동으로 받은 마음의 무게, 단절감은 매우 컸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패배한다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에 나오는 말이 실감난다. 결핍은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벼랑으로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평범한 것이 특별한 감동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엄마들이 당연한 것이 자폐성 장애아의 엄마에게는 특별하다. 언어장애로 ‘엄마’라는 말 한마디 듣는 것이 소원일 수 있다. 그 말을 결국 들은 엄마의 눈물을 상상해 보라.
요섭이 사춘기가 되었다. 여학생에게는 다정한 말로 잘 보이려는 것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모든 미래에 대해 계획표를 만드는 강박증이 있다. 더 예쁜 아이를 만나면 지금의 여자 친구는 탈락이다. ‘사운드 오버 뮤직’에서 마리아 수녀가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을 작가는 믿으며 스스로 위로한다. 여기까지가 애벌레 장애아와 장애엄마 이야기다.
'애벌레에서 고치로'란 제목은 자폐의 경험에서 수용하고 생각하며 적응하는 반성 과정 이야기이다. 요섭은 엄마가 좋아하는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빼앗아갔다. 그의 문을 열 열쇠가 없어 좌절한다. 문법이 정확하지 않은 말로 결혼 초대장을 만들었다는 아들에게서 엄마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음에 좌절하면서 아들의 고통과 고독에 슬퍼하고 아파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자폐성 장애는 2천 명 중 한 명꼴로 출현되며, 2세 경에 증세가 나타난다. 장애가 가족 동반이 되는 경우는 6% 정도다. 아들은 우기기 대마왕이자 스트레스 제조기로 여겨왔다. 엄마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강과 같아 보이지만 휘저으면 불순물이 온통 떠올라 오는 강이라고 비유한다. 이런 아픔 속에서도 작가는 이제 고치가 되어 머리모양이나 옷 입는 선택부터 존중해야 자유와 인권의 개념이 형성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고 믿는다. 젖은 생명을 위한 것이고 꿀은 사랑이 담긴 달콤함(행복)이다. 아이에게만 투자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도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엄마가 꿀이 되어야 꿀을 줄 수 있다.
아이를 누가 돌보아 줄까 염려하여 아이보다 하루를 더 살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서로의 얼굴에서 신의 그림자를 발견해야 한다며,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과 신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폐성 아이는 혼자 노는 것이 익숙하며 스스로 세팅된 놀이에서 방해를 원치 않는다. 평소 초록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파란 버스를 탔더니 울부짖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리에 민감하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덕성이 부족하고 웃는 얼굴에 저절로 따라서 미소를 짓지 못한다.
장애부모에게 섣부른 관심과 위로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생은 많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가는 과정인데, 섣부른 해결책을 말해 주는 것은 선행이라도 공감이 아니다. 인생에서 '예'라는 대답은 낙천이 아니라 결단인 것이다. 장애엄마에게 이웃이 장애가 신의 뜻이라는 등의 해석은 월권이다. 하지만 작가는 체험자로서 배설로서의 눈물을 넘어 공감의 눈물로 다른 눈물 흘리는 이에게 나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고치에서 나비로'라는 제목에서는 이제 장애를 수용한 후의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도 아이처럼 그 세월만큼 장애를 겪는다. 그러므로 그 무게를 나눌 사회적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기쁨도 슬픔도 이웃에게 건너가는 다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에서 집이 붕괴되어 버린다면 카드로 만들었기 때문이란 문장을 소개한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크루스테스라는 노상강도가 사람을 잡아다가 침대에 누여보고 작으면 눌러 죽이고 크면 사지를 찢어 죽인 '프레임'을 이야기한다. 독특함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장애 문제를 사회의 인식과 수용 문제로 확장시키는 것을 보면 이제 작가는 나비가 된 것이 분명하다.
이웃을 불특정 다수로 추상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개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속에 깊은 골을 고민하는 사람만이 서로를 끌어안을 끈이 되어 준다고 믿는다. 함께 사는 것이 괴로워도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소외는 납의 탓이 아니라 나의 탓이다. 나의 편의를 위해 상대의 편의를 제거하는 한 소외는 사회의 병이 된다. 상대를 객체화(프레임)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가 장애를 부인한다고 아이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자기 연민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스스로 유리벽을 치곤 한다. 죽는 게 낮다는 생각, 매장될 것이라는 공포, 장애아 양육으로 어려워진 경제적 어려움, 이 모든 것에 사회가 짐을 나누어 지는 복지 시스템이 장애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작가는 말한다. 최유진 작가가 물 뿌리는 소금땅은 아직도 장애의 다양성을 수용해 주지 못해 통합을 이루지 못한 험난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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