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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5시간! 드디어 나의 개인 신기록이자, 아마도 앞으로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이 될 것이다. 그동안 가장 길었던 게 3시간 남짓이었으니, 이번 5시간은 그야말로 올림픽 금메달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라 할 만하다. 5시간이면 고척스카이돔에 들러 느긋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애정하는 프로야구팀 히어로즈 경기를 관전하고도 남을 시간이고, KTX를 타면 부산을 왕복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면 대만에 들러 야시장 먹방 투어라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허나 현실의 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낯선 동네 한 구석에서 16분 마다 또박또박 보내는 “배차 지연” 문자만을 허허롭게 바라보는 신세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경기도교통약자광역이동지원센터(이하 경기도센터)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믿은 탓일 터다. 경기도센터는 2021년 12월, 장애인콜택시의 시군별 분절 운영을 해소하고 광역 이동 불편을 줄이겠다며 서비스를 시작했다. 2023년 10월부터 본격적인 광역 서비스가 시행되었고, 2024년 7월에는 관내와 광역을 통합한 배차 체계로 확대되었다. 홍보자료에는 “31개 시군 전역 배차 네트워크 구축, 수도권 전담 차량 확보”라는 찬란한 문구가 빼곡하다. 허나 어쩌랴. 현실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하염없는 ‘기다림’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날 오후 5시에 배차를 신청하고 한 시간쯤 지나자 경기도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9시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예 배차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교통수단을 신청했더니 돌아온 건 “알아서 가라”는 듯한 일방적 통보였다. 당최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른 이동 수단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장애인콜택시를 신청하지도 않았을 텐데, 안내는 다짜고짜 배차가 안될 수도 있다는 일방적인 통보라니!
마르케티(Marchetti) 법칙에 따르면 인류는 시대와 문명을 막론하고 하루 평균 약 1시간 정도를 이동(통근·통학·장보기·여행 등)에 소모한다는 경험칙에 따라 교통수단과 도시구조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동시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이 법칙대로 고대 로마에서 현대 대도시까지 평균 이동 시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통근 왕복에 약 54분을 쓰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 더 긴데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하루 집 밖 활동 10.3시간 중 2.5시간(150분)을 이동에 쓰며, 수도권 평균 일상 이동은 약 37~41분 남짓이다. 즉, 이동은 누구에게나 삶의 일부이며 예측 가능한 일상인 셈이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시민에게는 그 예측 가능성이 애초에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덴버의 특별교통수단 액세서라이드(Access-a-Ride)를 조사한 연구에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일반 차량보다 두 배 이상 걸리고, 실제로는 20~30분 거리라도 배차 신청부터 탑승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지 3시간쯤 걸린단다. 우리나라 장애인콜택시도 평균 대기시간 1시간, 흔히 2시간에서 3시간, 최장 4시간. 그러니 내가 경험한 5시간은 어쩌면 돌발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인한 흔한 현상일 뿐이다. 이쯤 되면 교통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강탈하는 제도라 해도 무벙하다.
문제는 기왕에 모두 알고 있다. 하도 자주 얘기해서 입안에 쓴물이 밸 테지만 또 되풀이해 얘기하자면 먼저 지방자치단체는 법정 기준에 맞춰 차량을 확보해야 하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잘 갖춰져 있다는 배차체계는 불투명하고 예약은 늘 꽉 차있다. 게다가 저상버스와 지하철 접근성 개선은 거북이걸음이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장애시민의 사회적 고립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교통수단을 기다리다 하루를 허비하거나, 외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편이 아니라 차별이고, 결국 빈곤과 고립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 사태를 ‘재난’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하철이 파업하면 유휴인력을 투입하고 대체버스를 가동하는 등 온 도시가 비상 상황에 돌입하지만, 장애인콜택시의 더딘 배차는 “늘 있는 일”로 치부되고 당연시한다. 하지만 장애당사자 입장에서는 매일 수백 명이 통원·출근·약속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동권 재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시내버스나 지하철이 5분 연착하면 화를 내고, 10분 늦어지면 민원을 넣는다. 장애시민은 5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경기도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업무시간이 아니라는 안내만 되풀이 들려왔을 뿐이다. 이동은 교육·노동·문화·돌봄 등 모든 사회참여의 전제인 만큼 장애인콜택시의 배차 문제는 단순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그래서 5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은 권리의 박탈이고, 제도의 방치이며, 사회적 차별의 증거가 아닐까.
일산의 한 모퉁이를 5시간 동안 서성이던 나는 ‘배차 중’이라는 문자만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헛헛한 웃음이 나오다가도 웃음 끝은 못내 씁쓸했다. 그날의 떠름한 경험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 장애시민의 추레한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지하철 연착으로 택시를 타기 위해 뛰는 한 시민의 평범한 삶과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다 반나절을 잃는 한 장애시민의 현실은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전자는 선택의 문제지만, 후자는 권리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기록한 5시간은 언젠가 다시 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록이 새로 세워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부끄럽고 서글픈 자화상을 갱신하는 거다. 어쩌랴, 서글픔을 넘어 분노가 치밀지만 난 오늘도 또다시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는 채비를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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