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장애계소식 정보&뉴스

정보&뉴스

정보&뉴스
게시글 검색
‘제11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15
장사연 조회수:157 125.131.193.163
2025-10-15 14:10:04

‘제11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15

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최근 ‘제11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 관련 실제 경험담을 갖고있는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필 공모전이다. 밀알복지재단이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했으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2023년부터 함께하고 있다.

공모전 결과, 김현지 씨의 ‘내 동생의 쓸모’가 일상부문 대상, 박항승 씨의 ‘장애가 있는, 그래서 더 가까운 특수교사입니다’가 고용부문 대상, 박주환 씨의 '숫자 2의 기적'이 아동 부문 대상 등 총 43개 작품이 수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3편, 최우수상 5편, 우수상 9편 등 17편을 소개한다. 열다섯번째는 고용부문 우수상 ‘그날, 스티벅스에서'다.

그날, 스타벅스에서

를 처음 본 건, 서울 분원에 막 발령받아 출근한 첫날이었다. 그의 얼 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앉아 있는 휠체어였다. ‘아, 이 친구가 말로만 듣던 그 직원이구나’하고 직감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혹시 내가 실수하지는 않을까? 나는 첫날 내 내, 전동휠체어를 조정하며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그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우리 회사는 몇 해 전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한 공공기관이다. 그러나 업무 특성상 서울과 수도권의 기업들을 많이 상대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서울에 분원이 여럿 생겼다. 나는 본사와 분원을 오가며 근무하다가, 서울 분원으로 발령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몇 백 명이 근무하는 지방 본원과 다르게, 조용하고 좁은 서울 분원 사 무실에서 네 명이 함께 근무하게 됐는데 그 중 유일하게 휠체어를 탄 그 가 있었다.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로 입사했다는 그의 첫인상은 좋았다. 성실하고, 업무처리도 정확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이미 마무리 해놓은 모습을 보고 그 책임감에 적잖이 놀랐을 정도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이건 그와 함께 거의 6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변하지 않는 점이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성심 껏 답했지만, 스스로 먼저 나에게 말을 건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건 조심스러움일까, 거리감일까, 아니면 내가 놓치고 있던 뭔가가 있었 던 걸까. 아직 마음의 문 같은 걸 열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나는 그렇게 혼자 생각했다.

지방 본원에는 사옥 내 구내식당이 있었지만 서울 분원에는 구내식당이 없었다. 여러 회사가 입주한 복합 건물의 한 사무실만 우리가 임차해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번 밖으로 나가 사먹을 수도 없고 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우리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다 같이 먹었다. 점심시간이 바쁘고 삭막한 회사에서 유일하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시 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그 친구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갔다. 어디에 사는지, 가족 중에 도와주는 사람은 있는지, 출퇴근은 어떻게 하는 지, 회사생활에서 내가 도와줄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하지만 매번 그런 이야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너나 할 거 없이 주말에 있었던 일이나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하게 됐고, 점심 시간이 끝나고 나서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 비로소 ‘아차’ 싶을 때가 많았다. 내가 마라톤을 시작했으며, 퇴근 후 러닝크루에서 중랑천 달리기 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조조영화를 본 이야기나 근처 맛집을 아내와 같이 갔던 이야기에 열을 올릴 때, 그 이야기에 배제되어 있었을 그 친구가 뒤 늦게 떠올랐다. 그는 그럴 때면 그저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야 그 어색한 웃음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건 어떤 웃음이었을까. 우리의 기세에 눌린 체념이었을까. 웃음소리 뒤 에 가려진 고요함을 나는 매번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런 일들 은 계속 반복됐다.

가끔은 점심시간에 셋이 외식하러 나갈 때도 종종 생겼고, 같이 가자고 해도 그는 도시락을 이미 싸왔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며 사무실에 남았다. 그 친구는, 내 말이 빈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를 배려해서 정한 식당도, 사전에 미리 말해주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옷을 다 챙겨 입고 나가기 직전, ‘어? 맞다? 같이 가실래요?’ 하는 식이었으니까. 그땐 우리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리고 점심을 다 먹고 돌 아온 뒤에야 묘한 찝찝함을 느끼곤 했다. ‘괜찮다고 했잖아’, ‘다들 그 렇게 하니까’, ‘괜히 나가서 고생하는 것 보다, 사무실에서 먹는 게 본 인한테 더 편할지도 몰라.’ 스스로를 그렇게 합리화하며 지나쳐 왔던 그 순간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 역시 내 안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꾼 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돌을 갓 넘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키즈카페로 이동할 때였다. 보통 차를 타고 가는데, 그 날은 장모님이 차를 빌려가서 차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 내가 내려야 하는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 었던 것이다. 유모차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역에서 내리게 되면, 그 역 안에 갇혀서 꼼짝도 못 하게 된다. 짜증이 났다. ‘아, 왜 하필 내가 꼭 유모차 끌고 온 날 고장 이야?’ 역무원에게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대해서 따지듯이 물었지만, 돌 아온 건 기계적인 대답뿐이었다.

“이게 지난달부터 수리 중이라서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지난달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한테 지하 철 엘리베이터 고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르고 저런 이야기를 한다 고?’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이 지하철을 그대로 타고 가서,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하는 다른 역 에서 내려서,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오시든가 택시 타든가 해야죠.”

그 순간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유모차를 꽉 잡은 채 역 안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 문득 그가 떠올랐다. 매일 휠체어를 타고 다니 는 그가, 날마다 이 불친절한 도시를 통과해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 올랐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하루가 얼마나 피곤하고 어려울지를 실감하 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내 시야가 조금씩 바꿨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 에 들어왔다. 의외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거나 몇 주째 수리중이라고 붙여놓은 지하철역이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턱이 높은 식당 입구,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버스 계단. 이 세상이 휠체어에 얼마나 가혹한지가 보였다. 내가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그나마 비슷한 입장이 되어서야, 그것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조금씩 그 친구의 삶이 보였다. 그 친구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가 이해가 됐다.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진 날, 아침 9시가 다 되어도 그 친구가 출근하지 않게 되면, 그가 지금 한 시간 넘게 장애인 콜택시 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서울 분원에만 고정 적으로 근무하는 이유는, 그가 서울 생활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우리 회사 가 이전한 그 지방에 충분한 장애인 콜택시가 없어서라는 것도 알게 되었 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정보들이, 하나둘씩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뉴스로 접하는 지하철에서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같은 것들이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 날이 찾아온다. 그 친구가 처음으로 나에게 커피를 같이 먹자고 제안한 것이다.

“과장님 오늘 커피 같이 드실래요?” 나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네. 그럼 제가 믹스 커피 두 잔 타올게요.”

“아니요. 스타벅스 가요. 제가 쏠게요.”

“네? 스타벅스요?”

우리는 그날 도시락을 먹고 사무실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복 잡한 사람들 틈에서 1층을 빠져나와 신호등을 건너고 스타벅스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주문한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복잡한 사람 들 틈에서 커피를 사왔지만,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내가 그를 도와준 것은 조그만 턱이 있을 때 그의 전동휠체어 뒷부 분을 조금 잡아 준 것과 스타벅스 출입 유리문을 그가 들어오는 동안 잡 고 있었던 것 정도였다. 그런데 그 커피 두 잔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 짧은 여정이 이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 그는 자신이 입사하고 난 후 누군가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사준 게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최근에 내가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이런 저런 배려를 해줬던 것에 대한 감사표시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다음주, 분원 직원 모두에게 점심 외식을 제안했다. 스타벅스를 같이 갔다 온 이후에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들 북적북적한 서울 시내의 점심시간이라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와 충분히 점심을 같이 할 수 있 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그 식당까지 친구가 못 갈만한 거리가 있는지,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는 입구인지를 확인하고, 미리 식당 에 전화해서 휠체어 들어갈 자리에 의자를 빼달라고만 요청하면 됐다. 같 이 점심을 먹은 나머지 두 명의 직원들도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좀 더 자주 먹을걸.”

그날 점심 식사에서도 어쩌면 그가 배제된 대화 주제들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는 더 크게 웃었고, 그와 함께 먹는 밥은 유독 맛있었다.

나는 그와 6개월을 같이 근무한 후,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서 사무실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그 6개월의 시간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살아야만 한다는 것. 나 또한 돌이 갓 지난 나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극심한 도움과 배려를 통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 다. 나 또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다. 나 와 조금 다른 형태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 친구를 통해 배운 것은 장애인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이었 고, 배려의 삶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타인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란 사실 을…….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