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어머니, 어머니! 축하드려요. 예준이 오랑우탄 작품, 러쉬 코리아 오티즘 엑스포에 선정되었어요. 저에게 멘토링 받은 학생 중에 유일한 초등학생이니, 대단해요. 예준이! 시간 되면 어머님, 오티즘 엑스포 현장에서 뵙고 인사드릴게요.” 한껏 들뜬 복지관 미술 강사의 축하 전화 덕에 나도 기분 좋은 호들갑을 섞어가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답했다.
욕심을 내려놓자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적의 선물이었다.
색연필에 대한 집중력, 오랜 시간 온몸으로 겹겹이 눌러가며 자신만의 색을 만든 아들. 그 누구도 완성 전까지 예준이의 작품을 평가할 수 없다는 인내심을 가르쳐 준 하늘의 선물이었기에 작품 선정 소식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감사가 흘러넘쳤다.
“선생님, 그때 추천해주신 ‘그림 엄마’ 카페에 예준이 작품도 올렸어요. 덕분에 저도 그분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아 참 좋네요. 고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한부열 작가를 시작으로 이제는 ‘그림 엄마’의 운영자인 한젬마 예술감독과 작가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오티즘 엑스포 현장!
아침부터 설레고 분주했던 마음 탓일까? 발걸음은 오프닝이 시작도 되기 전 이미 아들 작품 전시관 앞이었다. 분명 집에서도 수차례 보았던 내 새끼 그림이건만, 전시장 조명 아래 아들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보고있어도 실감이지 않았고 어느새 감사의 눈물은 마스크 안으로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여러분, 이 시간 여기 계신 발달 장애 작가 세 분과 매니저이신 어머님들께서 귀한 걸음 함께해 주셨습니다. 우리 발달 장애 작가들의 작품과 이분들을 멋지게 성장시킨 어머님들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시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분명 한젬마 예술감독이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그녀가 엑스포 현장 토크쇼 진행자로 내 눈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아들 덕에 두 번째 꿈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기에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석처럼 이끌려 앉은 토크쇼 현장, 마치 대입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고3 엄마처럼 하나라도 놓칠세라 레이저 눈빛을 장착하니 언제 내가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경청은 덤이었다. ‘그림 엄마’ 커뮤니티에서 댓글을 달아준 한젬마 감독과 작가, 어머님들!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사람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는 게 그저 꿈만 같았기에 메모지를 꺼내, 그들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메모하기 시작했다.
토크쇼가 끝나고 참석한 많은 이들과 한젬마 감독이 기념촬영을 이어갈 무렵, 막상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그들 앞이었건만 많은 이들에 둘러싸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 내가 끼어들 틈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내 발걸음은 다시 아들 작품 전시관 앞에 멈춰있었다.
“혹시 이 오랑우탄 작가 어머님이실까요? 아까 너무 강연 열심히 듣고 계셔서 깜짝 놀랐어요. 이번 작품 너무 좋습니다. ”
내 등 뒤로 맑고 경쾌한 초록빛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으로 빛나는 그녀, 한젬마 예술감독이었다. 내 기도에 하늘이 응답하시는 만남의 순간이었다.
설렘과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예준이 작품에 대한 그녀의 응원 도슨트가 하울링처럼 들리자 또 한 번의 눈물이 마스크 안으로 주책스레 흘렀다.
다음 날.
남편과 아들과 함께 전시관을 찾았을 때도, 한젬마 감독은 예준이에게 먼저 다가와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주는가 하면 아낌없는 응원의 모습에, 아들의 미소가 마스크 밖으로 묻어 나왔다. ‘아! 내가 젊은 시절 책으로 만난 베스트셀러 작가 한젬마 씨가 이렇게 겸손 한 분이었다니.’
그 순간 ‘그림 엄마’ 커뮤니티의 원동력은 어쩌면 이분의 겸손하고 선한 영향력으로부터 출발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날을 시작으로 그녀의 초록빛 예술의 힘에 처음 물들기 시작했다.
그날 밤.
엑스포 행사가 끝나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평소처럼 공모전의 바다를 헤매던 날.
우연히 내 눈에 영국 사치갤러리 공모전이라는 문구 하나가 들어왔다. 평소 미술에 무지했지만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한 기안 84, 송민호 작가 덕분에 사치갤러리라는 곳의 명성에 대한 얕은 상식 정도를 노력 없이 얻은 바 있었다. 이런 엄청난 장소에 국내에 있는 초, 중고생 단 6명만을 뽑아 영국 사치미술관에 유명작가들과 함께 영국전시를 참여시켜준다는 공모 글이었다. 그야말로 로또 같은 유혹의 공모전이었다.
‘저기 아트페어 공모전 담당자시죠? 혹시 낙선 시 작품 반환은 되나요?’
아들의 매니저요, 소속사 대표인 내가 두려울 것이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공모전 문의를 시작으로 아들의 오랑우탄 그림을 일단 공모전에 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매회기 공모전에 아들의 출품작이 계획될 때마다 남편은 출근길에 작품 배송을 도맡아 가며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은 제법 예준이 일인 기획사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공모전 발표 하루 전날, 갑자기 엑스포 전시 참여를 열어준 ‘러쉬 코리아’가 창립 20주년 행사에 엑스포 전시 참여작가들과 콜라보전을 기획 중이니, 작품 원본을 다시 본사로 제출해 달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맙소사! 여보! 나 어쩌지? 이 그림 사치미술관 공모전에 제출했는데…. 큰일이네.”
“에잇! 괜찮아, 생전 복권을 사도 500원도 안 되는 너잖아! 설마 예준이가 그 6명 안에 든다는 게 쉽겠어? 솔직히 예준이가 공모전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이런 공모전은 좀 쉽지 않지, 전국에 내놓으라 하는 일반 아이들이 대부분 학원 선생님 지도받아서 제출하고 그럴 텐데. 그냥, 마음 비우고 낙선하면 그림 찾아와서 ‘러쉬’ 회사에 제출하면 되니까, 어서 늦었는데 자, 괜찮아.’
뭣이 되었던 긍정적인 우리집 아저씨 덕분에 걱정을 내려놓고 예민한 나는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맙소사! 여보! 여보! 일어나봐! 말도 안 돼! 여보!’
나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는 알람도 이길 기세로 남편을 깨웠다.
‘이거 봐! 예준이가, 우리 예준이가 그 공모전 최종 6명 명단에 들어갔어. 어머머! 기적이야! 다시 봐 이 공모전 당선자 명단에 우리 아들 맞지? 양*준 이거 우리 예준이겠지? 텔레비전에 나온 기안 84, 송민호, 낸시랭 작가랑 배우 박신양 작가랑 같이 영국 사치미술관에 전시한 데. 설마 공모전 제출자에 또 다른 양씨 성을 가진 학생이 또 있었나? 아니겠지?’
자다 일어난 남편도 잠이 덜 깨 얼떨떨해하자, 도무지 기다리기 힘들었던 나는 오전 9시 공모전 주최 측에 합격자 확인을 위한 전화를 누르고 있었다.
“네, 양예준 학생이 최종 수상자 맞고요. 축하드립니다. 이번 심사위원 총 6분 중 국내 작가3분과 영국 심사위원 3분의 만장일치로 양예준 학생 작품이 제일 먼저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국 잡지에도 아드님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고, 영국 사치미술관 티켓도 보내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로 사실 여부를 듣고 있는데도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던 그 날 아침.
‘기적이 있다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여보 이게 꿈이야 생시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는 혼자 로또 복권 1등이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행복해서 데굴데굴 구르고 입이 귀에 걸렸다.
‘아! 맞다. 여보, 러쉬 회사에 작품 원본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어쩌지!’
그 순간, 공모전에 붙은 행복도 잠시, 잊고 있던 걱정이 밀려와 전화기를 들었다.
“예준 작가 어머님, 우선 수상하셨다니 축하드려요. 하지만 이번 러쉬 20주년 행사 기획자이신 한젬마 부사장님과 직접 통화하셔서 작품 원본의 부재 상황을 직접 설명하시는 게 가장 정확하지 싶습니다. 제가 이 소식을 전하다 보면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요.”
전화기 너머 화장품회사 직원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막상, 교무실에 불려가야 하는 학생마냥 덜컥 걱정이 밀려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누가 듣는 이라도 있을까 싶어 아들의 치료실 비상구 계단에서 자리를 잡고 조용히 전화벨을 눌렀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저는, 색연필로 오랑우탄 그렸던 초등학생 작가 양예준 엄마입니다. 그게 저…….”
생각과 말이 정리되지 못한 채 웅얼거리듯 맴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본업이 기자였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마치 교무실 앞에 불려간 걱정 가득한 18살 소녀일 뿐이었다.
“네? 누구, 누구시라고요?”
전화기 너머로 맑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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