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PD라고 하는 프로듀서(producer)는 방송, 영화,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진행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듀서는 작품 기획부터 예산 관리, 인력 배치, 일정 관리, 홍보 전략까지 다양한 업무를 총괄 하면서 프로젝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공연예술에서의 프로듀서는 창작자들의 창의적 발상과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한다.
이와같이 능력과 체력이 요구되는 직업이기에 남성 프로듀서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 프로 듀서가 드문 연극 & 공연계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프로듀서 김수연은 독보적인 존재이다.
김미연 시대
배우의 꿈을 갖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연극배우가 되는 것을 꿈꾸며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고, 대학 선배의 권유로 공연 무대감독으로 전향하였다.
전공한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 오페라, 발레, 콘서트 등 무대감독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녀에게 2007년부터 뮤지컬 제작감독의 업무가 주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프로듀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당시 그녀의 이름은 김미연이었다.
그러던 2015년 10월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회식을 하던 중 어이없이 2층에서 추락을 하는 사고로 척수 신경이 손상되어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2017년, 아버지가 김미연을 김수연으로 개명을 해 주었다. 두 다리로 뛰어다니던 김미연 시대는 접고 김수연으로 새롭게 살라는 뜻이었다. 그녀도 아버지의 뜻에 공감했다.
국립재활원에 있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운전이었다. 운전연수반에서 손으로 운전하는 법을 배우고 그동안 타고 다니던 자동차에 핸드콘트롤을 부착하였다. 하지만 혼자서 차에 올라타고 내리는 승하차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김수연이 가는 길
김수연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공연예술을 만들고, 기획하는 프로듀서이고, 가장 좋아하는 일도 프로듀서인데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수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그때 마침 전화를 받았다. 오랜 기간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연출하던 교수님이 성균관대학교 예술연기학과가 주관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작감독(Production Manager)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김수연이 다친 것을 알면서도 의뢰를 한 것이다.
그녀는 첫 복귀작이라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다.
“제가 감을 잊지 않았다면 해 보겠습니다.”
김수연은 자신이 일에 너무 목말라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연을 제작한다는 것이 그녀 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미팅을 최소한으로 줄여 주는 주변 스태프들의 세심한 배려에 그동안 현장에서 부딪히며 쌓았던 의리라는 것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느껴졌다.
“제가 이제 느낌이 달라진 거죠.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저도 예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일을 했어요.”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 2017년 11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올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익이 발생한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포스터에 제작감독 김수연이란 자기 이름을 확인하며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새로운 도전
그 전에는 없었던 학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2018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하여 공연예술과 기획에 대한 이론 공부를 하였다.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몸으로 체화된 경험에 학문적 이론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있을 때라서 석사과정 공부가 오래 걸렸다.
2021년에 졸업을 했는데 2022년부터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부 겸임교수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초빙교수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새로운 도전에 김수연은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2003년, 쎈스(CenS)라는 프로덕션 회사에 직원으로 일을 했다.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선정이 되면 공연 준비를 하느라고 쉬는 날도 없이 열정을 바쳐 일한 결과 2009년도에는 쎈스의 대표가 되었다. 지금도 그녀는 쎈스의 대표로 콘텐츠 프로듀싱, 무대감독, 무대기술감독 전문 회사로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장애인이 되고서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안 찾아 주면 어떡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일을 하는데 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다치기 전의 활동들을 많이 찾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했던 일들이 지금은 너무너무 힘들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휠체어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걸림돌을 해결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 주는 스태프들의 여유 때문이다.
공연장 무대 주변에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어서 관객들이 이용하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느라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감내해야 할 자신의 몫이라고 받아들인다.
또한 배리어프리 공연을 위해 배리어프리 교육을 받았지만 기능 면만 강조한 서비스 개념이 어서 배리어프리가 왜 필요한가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공연을 만드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며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공연장을 다시 누리며
2024년 12월에 무대에 올린 작품 <다시 만나는 세상 BEYON:D>를 제작감독(Production Manager)으로 참여하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한 2024 꿈의 극단 기획형 프로젝트에 입찰로 따낸 사업이다. 총 110명이 등장하는데 정신장애인 배우가 15명이다.
6개월 동안 교육을 실시했는데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배우들의 교육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창작진들을 이해시키는 시간이 필요했고, 90여 명의 비장애인 배우들이 장애인 배우들과 만나는 합동 연습에서는 장애인 배우들 못지 않게 긴장을 했다. 혹시라도 장애인 배우들이 불편해할까 봐, 비장애인 배우들이 장애인 배우들의 연기를 동정의 마음으로만 바라보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15명의 정신장애인 리허설 시간에 90명의 비장애인 배우들이 객석에서 모니터링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게 관람하고, 호흡하고 박수쳐줘서 우리 15명 장애인 배우들이 연습실보다 훨씬 잘 하더라구요.”
이 공연은 아쉽게도 1회밖에 공연을 안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보람되고 의미 있는 작업이 었다.
<2023년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작 뮤지컬 ‘장영실과 함께하는 별별 GPT’> 는 개발, 기획, 유통까지 책임지는 총괄기획(Producer)을 맡아 진행했다.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기획‧개발된 이 작품은 열린객석(릴렉스드 퍼포먼스), 수어통역, 폐쇄형 한글자막을 준비하였다.
열린객석이란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공연 관람이 익숙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자유롭게 소리를 질러도 되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객석 불을 켜 둔 상태로 공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 들의 대사를 쉽게 표현하고 공연 시간도 대폭 줄여서 관객을 이해시키고 공감시키는 공연을 말한다. 배우들이 처음에는 연기하는데 집중이 안 된다고 힘들어 했지만 나중에는 배우들이 발달장애인 관객과 호흡하여 즐기는 것을 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대상이 너무 광범위한 장애인들에게 포커싱하기보다는 집약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여, 2024년 7월 여수GS칼텍스 예울마루 대공연장에서 재공연된 <2024 지역 맞춤형 중소규모 콘텐츠 유통사업>에서는 회차별로 장애 특성에 맞는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준비하여 공연하였다.
연령대는 다르지만 120명의 발달장애인들이 공연을 관람하였고, 수어통역 회차에서는 30명의 지역 청각장애인들을 초청하여 생애 처음으로 뮤지컬을 관람하는 장애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였다.
2021년 12월, 연극 <나인프리다>도 총괄기획(Producer)하였는데 번역극이었다. 지체, 뇌병변, 시각, 청각장애 배우들이 열연을 하였는데 당시 코로나19로 관객을 50명으로 제한하여 아쉬 움이 컸다.
2021년 9월에는 경기도의료원의 의뢰를 받아 콘서트 <#반창고 PROJECT>의 제작감독
(Production Manager)을 맡아 비대면으로 진행하였다. 자신도 병원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환우들을 위한 콘서트에 자신의 진심을 담았다.
2019년 12월, 창작뮤지컬 <삼국유사>는 창작뮤지컬이고 역사물이라서 작업이 방대했다. 고증도 필요했다. ‘맞다, 틀리다’ 등 연구자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관객들한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포인트를 두었다.
이 작품은 서울시의 불교예술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조계종 사찰에서 기획해서 김 프로듀서에게 의뢰를 한 것인데 작품 준비 기간이 1년 반 정도 걸렸다. 2019년에 경상북도 군위군에 있는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에서 공연하여 큰호응을 받았다.
이 작품을 서울시에서 보고 서울에 있는 불교도들에게 보여 주기에 적당하다는 판단으로 2020년 공연지원금이 책정되었는데 코로나19 시기여서 비대면으로 공연을 한 후 불교tv btn에서 일주일에 3회 방송 편성을 했다. 방송은 작품의 완성도를 더 요구하기 때문에 역사적 서사를 불교방송 시청자들 시선에 맞추어 이야기를 축소하여 공연 시간을 110분에 맞췄다.
그리고 2019년 5월 제2회 서강대 총장배 공연경연대회의 기술감독(Technical Manager)을 맡았다.
“대학교 경연대회도 규모가 크거든요. 학교 축제에 큰 기획사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와요. 서강대학교는 제가 장애인이 되기 전부터 학교에 중요한 행사 때마다 저를 부르시죠. 그런데 다친 후에도 계속 불러 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보통 불편해서 못할 텐데 이렇게 생각하고 아예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 일상인데 말이죠. 제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아시고 나서 찾아 주시더라고요.”
2019년 3월 (사)자연사랑 주최로 한일 평화 콘서트 <EAST STORY>와 같은 해 4월 여주시 주최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뮤지컬 <임정의 불꽃>의 제작감독(Production Manager)을 맡아 콘서트와 뮤지컬을 연달아 프로듀싱했다.
2018년 5월, 서강대학교 주최 거리 축제 공연 <서강 미라클 4>의 제작감독(Production Director)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거리 축제에서 야외 거리극을 했는데 이런 공연이 축제 때나 약간 있지 흔치 않죠. 거리극은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이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잠시 머물다 흥미가 떨어지면 이동하기 때문에 공연이 짧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거리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병원 생활을 하던 2017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작감독으로 휠체어를 타고 공연 현장으로 복귀한 김수연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프로듀서로서 기량을 발휘하면서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장애인예술에 대한 평가는?
장애인문화예술축제도 관심은 많지만 지금은 어떻게 진행이 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분석 하고 있는 중이예요. 마침 작년에 공연기획 지원사업의 평가를 맡았어요. 평가를 위해 작품 백여 편 이상을 분석하면서 굉장히 좋은 공부가 됐어요.
선정된 단체 사업의 모니터링을 위해 직접 나가서 현장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금 알아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현재는 장애예술인들의 문화예술교육 강사 양성과정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역시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장애인예술의 방향은
우리는 도장깨기를 하듯이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장애예술인들은 예술 표현을 짧게 하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저는 느껴져요. 이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신체적 특성 때문이죠. 좀 편하게 표현했을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장애예술인이 공연예술 현장에서 일을 하는 스태프로 키우는 거예요. 예술 영역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계시지만 기획과 감독, 연출, 기술 용역 분야에 인력이 있어야 해요. 장애인예술의 발전에 장애 당사자가 스태프로 참여하지 않으면 완성도 면에서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점들을 잊지 않고 장애예술인들에게 계속해서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