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얼마전 부모교육을 통해 만난 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저는 아내와 사별하고 중증의 자폐인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들은 소통이 거의 안되요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아이가 하나라 제가 죽고나면 돌봐줄 형제도 없어요. 저는 진작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했고, 장기기증 서약도 했어요 연명의료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얼마 전 저희 아들을 데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갔습니다. 어차피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연명의료하면 골치만 더 아파요. 그런데, 아들이 연명의료에 대해 이해도 못하고, 의사표현도 잘 안된다고 거절 당하고 왔어요. 본인이 이해하고 동의한다 의사를 표현해야 인정이 된다더라고요. 참 심난하네요."
최근들어 각종 매체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하라는 광고를 자주 마주한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중 20% 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 외 80%는 법의 존재를 몰라서, 신청이나 접근방식을 알지 못해서인 경우도 있겠지만, 발달장애인들처럼 이해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에는 '19세 이상인 사람은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고 규정되어 있다. 법적으로는 발달장애인이 배제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안내해야 한다는 의무, 상담사가 어떤 기준으로 의사능력을 판단하는 지에 대한 가이드, 쉬운 설명과 안내자료에 대한 부분은 텅 비어 있다. '성인 누구나의 권리' 라고 문을 열어놓았지만, 문고리가 저 높이 달려 있어 발달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인 셈이다.
유럽, 미국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사전연명의료 보장을 이야기할 때 '이 결정을 이해, 판단, 표현할 수 있도록 얼마나 지원했는가' 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쉬운 언어, 그림 자료, 반복 설명, 신뢰하는 사람의 동행을 통해 충분히 도와준 뒤에도 이해가 어려운 경우에만 ‘의사결정 능력 부족’이라 말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작성된 사전의료의향서와 치료거부 결정은 비장애인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필자는 현재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노후준비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모임과정에서 회원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교육 한 번 해주세요" 라는 요청을 받고 얼마 전 교육을 진행했다.
유튜브에서 쉽게 설명된 영상을 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쉬운 표현으로 전환한 체험판 양식지에 작성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오래걸렸지만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해주자, 참여자 중 일부는 "저는 연명의료 받고 싶지 않아요" 라고 자기 생각을 피력할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명확하다. 첫째, 연명의료결정법의 “의사결정 능력 있는 19세 이상 성인”이라는 추상적 문장을 다양한 인권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등록기관과 의료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식 가이드라인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당사자가 구체적인 결정을 이해·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했는지부터 검토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 발달장애인용 쉬운 말·그림 사전연명의료 자료를 개발해야 한다. 현행 서식을 단순히 쉽게 요약하는 수준이 아니라, 성인 발달장애인, 가족, 복지현장, 의료·법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설계 방식으로, 실제로 당사자가 선택지를 보고 고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성인 발달장애인의 자립·노후·사별 준비 프로그램 안에 사전연명의료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심어 넣을 수 있다. “아플 때 어떻게 돌봐줬으면 좋겠는지”, “어떤 치료는 부담스럽다고 느끼는지”를 그림, 카드, 영상 등을 활용해 표현해보고, 그 결과를 당사자의 노후계획에 포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의 사전연명의료에 대한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연구와 기록이 필요하다. 실제로 제도를 안내받고, 이해하고, 작성까지 이어진 사례는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서 어떤 장벽을 만나는지, 당사자와 가족,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를 모아야 제도 개선의 방향도 선명해진다. 장애계 언론은 바로 이 지점을 비추고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논의는 연명의료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발달장애인을 '자기 삶과 죽음에 대한 주체적 존재' 바라보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미 한국의 법은 “19세 이상이면 누구나”라는 문장을 써 두었다. 우리의 역할은 그 문장이 실제 발달장애인의 삶에 도달하도록, 문고리를 낮춰달아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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