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원장 방귀희, 이하 ‘장문원’)이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모두미술공간(서울스퀘어, 서울역 앞 구 대우빌딩)에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2025년 장애예술인 융복합 문화예술 창작 지원 사업> 성과공유회를 개최한다. 이 공유회는 ‘잠재되어 있는 감각 속, 예술의 메아리’란 부제가 붙어 있다.
예술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기술이다. 기술은 표현 방법을 다양하게 하고, 예술의 깊이를 더해 준다. 미술에서 원근법이라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미술에 얼마나 눈부신 기여를 했는지 생각해 보면 기술적 시도를 통한 끊임없는 실험은 새로운 태양계를 발견하는 것처럼 경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은 예술의 확장만이 아니라, 다감각적 접근과 체험의 실감을 더함으로써 장애인들에게도 예술적 소통에서 자유와 환희를 선사한다.
장문원에서는 장애인의 예술을 확장함과 동시에 역량을 높이고 창작열을 북돋우기 위하여 올해 처음으로 <2025 장애예술인 융복합 문화예술 창작 지원사업>을 시행했다. 지난 8월 지원사업 공모를 하였는데, 많은 예술가들이 사업지원을 신청하였다. 베리어프리를 융합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상상적 예술을 현실로 체험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많은 신청접수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얼마나 이러한 융합기술과 예술의 접목에 목말라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공모를 통한 창작 지원은 처음이지만, 장문원은 2023년에 ‘신기술 기반 장애예술 쇼케이스’를 기획하기도 하였고, 장애예술인의 표현력 제고를 위해 신기술 창작도구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융합기술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는 예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예술, 가상현실(VR)을 이용하는 예술, 인터랙티브(interactive, 사람과 시스템이 서로 반응하며 주고받는 양방향 상호반응 방식) 기술을 이용하는 예술 등 다양한 예술과 만나게 해 주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단순한 제작비 지원만 하지 않았다. 장문원은 공모 작품 중 6개 팀을 선정한 후,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9월과 10월에 융합에술 현장을 투어(필드 트립)하면서 영감 확장과 창작 방향을 논의하였고, 신기술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1 멘토링과 중간 공유회를 진행하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4개월 간 작업한 작품은 전시 4팀, 공연 2팀으로 전시회와 공연을 합하여 공유회라고 정하고 결과물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이 사업은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창작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고 ‘기술’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예술인 스스로 습득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공모 단계부터 ‘기술을 활용한 작품’ 여부보다는 향후 기술을 예술적 언어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예술인 개인의 서사, 문제의식, 그리고 창작 의지를 중심으로 심의가 이루어졌다. 공유회 역시 단순히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18일 오후 4시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마련했으며, 수행 과정도 하나의 결과물이므로 결과물 모두를 공유함으로써 융합기술을 통한 예술의 장 확장을 도모한다.
전시 부문에서는 ▲가상현실 공간을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박은영 작가의 <Untitle> ▲얼음 속에 갇힌 20종의 캐릭터를 구출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인 신현채 작가의 <나의 얼음성을 녹여서 친구가 되어줘!> ▲바다의 온도 변화와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움직이는 고래 키네틱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를 보여주는 최석원 작가의 <바다의 온도> ▲멸종 위기 동물을 AI와 3D모델링을 활용한 VR 게임으로 표현한 현승진 작가의 <동물의 왕국> 4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공연 부문에서는 최노아 작가가 18일 오후 5시, 감성 컴퓨팅과 실시간 생성형 AI를 활용한 공연을 통해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에이블라인드는 19일 오후 6시, 시각장애 작가들 사이의 비가시적 시각언어 생성 실험으로 AI 비전 인식 기술과 인터랙티브 사운드를 결합한 감각 기반 미디어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Untitle>을 전시한 박은영 작가는 일상의 지각의 구조를 드러내는 모티프를 기반으로 회화, 설치, 디지털, 그래픽, 메타버스(아바타 가상현실) 작업을 전개하고, 다양한 매체를 경험해 비가시적 감각과 시간성을 공간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융복합 시각예술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개인전과 설치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 세계를 확장해 왔다.
작품 <Untitle>은 전시장 전면 벽면에 가상 설치 이미지를 모티프로 제작한 영상이 오디오 인터랙트와 결합된 형태로 투사한다. 관객을 가상현실로 끌어들여 가상공간과 현실 관객이 서로 바라보며 초현실과 현실의 공존 속에서 과거의 현재, 물질과 비물질의 경험을 통해 미디어아트의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는 현실과 물질을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과 초현실까지 마주 보는 세계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가를 현실로 돌아와 생각하게 한다.
<나의 얼음성을 녹여서 친구가 되어줘!> 작품을 전시한 신현채 작가는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림의 길로 들어선 작가다. 그렇게 외로움 속에 침전되어 있던 작가는 그림이라는 표현 수단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존의 언어로 통하지 않던 작가의 이야기를 비언어적 기호인 예술을 통해 표현하기로 한다. 작가는 회화로, 설치로, 음악으로, 미디어로, 퍼포먼스로 나의 다름을 잊고 자유롭게 뛰어놀기로 했다. 작가는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며, 삶의 모든 순간이 예술이 되기를 소망하는 셰이드신(Shade-Sin, 작가의 필명)이다.
그의 캐릭터는 오랜지(자신)와 곰(자폐)의 특성을 결합한 독특한 존재로, 긍정과 포용 예술을 하는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20종의 감정 캐릭터를 선보인다. 각 캐릭터가 얼음 속에서 관객의 손길을 기다리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얼음 궁전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완성한다. 얼음 속 캐릭터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허물지 못한 외로움의 개체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바람을 불게 하고 하트를 날려 생명을 불어넣고 대화를 통해 친구가 된다.
<바다의 온도>를 출품한 최석원 작가(발달장애인)는 그동안 예술과 놀이를 접목해 온 창의예술체험을 추구해 왔다. 사람과의 눈 맞춤이 힘들었던 최석원 작가는 자연스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작가에게 동물은 가장 친한 친구였고, 최고의 그림 모델이었다. 동물의 눈을 통해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그림은 순수하고, 솔직하며, 따뜻한 위로가 된다. 늘 그래왔듯이 작가의 작품 속에는 힘없고 약한 동물이 주인공이 되어, 동물들의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밝고 선명한 색과 단순하지만 개성 있는 형태의 그림은 상상력, 즐거움, 작은 울림을 전해준다.
이번 작품은 사회참여 예술로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작품 <바다의 온도>는 바다의 온도 변화와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고래 키네틱(동작 인식 센서)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결국은 하나이며, 우리 모두에게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는 관계를 느끼게 한다. 그는 아쿠아리움과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수중 동물들이 가진 신비한 에너지를 모티프로 한다.
최석원 작가와 함께 현승진 작가도 밀알복지재단 소속 브릿지온 아르떼 작가다. <동물의 왕국>을 출품한 현승진 작가는 동물들을 사랑한다. 무서운 사자도, 작고 귀여운 생쥐도,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도 모두 친구이다. 동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고스란히 그림 속에 담겨 보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한다. 처음엔 서툰 하나의 터치로 시작된 그림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가의 감정과 이야기를 담는 소중한 언어가 되었다. 밝고 선명한 색채, 단순하고 힘 있는 선, 그리고 동물들과 나누는 교감은 작가가 된 그만의 특별한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 <동물의 왕국>은 현승진 작가가 그린 멸종 위기 동물과 동물원에서 버려진 동물들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AI와 3D 모델링,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VR 게임이 탄생하게 되었고, 게임을 통해 동물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서 동물들은 갑갑한 현실의 동물원이 아닌, VR 메타버스로 구축된 광활한 왕국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관객들은 게임을 통해 현승진 작가의 재미있는 동물 캐릭터로 재탄생한 동물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다. 장애인도 동물들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의 미술접근성을 추구해 온 에이블라인드(박환, 유진)는 이번에는 퍼포먼스 팀으로 변신한다. 국내 유일의 전맹 화가인 박환은 시력을 잃은 뒤부터 10년간 독창적인 촉각 구상화 기법을, 선천 저시력 서양화가인 유진은 특유의 불안정하고도 솔직한 표현을 그림으로 발전시켜 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지연된 언어〉 공연은 시각장애 작가들 사이의 비가시적 시각언어 생성 실험이다. 보이기 전의 시각, 말해지기 전의 언어를 탐구하며 소통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작가들은 소통의 통로인 AI와 끝없이 협상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연’은 관객들을 지각의 근원으로 초대한다.
작품은 이러한 내재적 시각성을 AI라는 동시대 기술을 통해 외재화하는 실험으로 구성된다. 이때 AI는 시각예술 언어를 전달하는 통로로만 작용하며, 관객은 생성된 소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겹쳐지는 두 개의 영상과 함께 인터렉티브 사운드와 움직임 퍼포먼스(김시락 전맹예술가)로 감상할 수 있다.
〈지연된 언어〉는 “시각장애인이 시각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명료한 질문이 낳은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지연과 차이는 소통의 한계를 의미하기보다는 관객들을 지각의 근원으로 초대하는 요소가 되어준다. 따라서 명료한 대답을 하려는 오만을 벗어나 철저히 소통의 상황만을 기획하여 언어가 생성되는 과정을 관객들이 체험해 볼 수 있게 기획하였다. AI는 분석하고 답을 찾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지연은 지연이 아니라 잠재된 것으로 해석된다. 표현된 외면 이전의 본질을 탐색한다.
<공명(againandgain)> 공연을 하는 최노아 작가(자폐성 장애인)는 2017년 뉴질랜드 Audio Foundation에서 라이브 라이터로 데뷔했다. 음악, 무용, 라이브 페인팅,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예술 분야와 협업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베를린 Ausland, 함부르크 Tonali 콘서트홀, 소피아 독일문화원, 문화비축기지, 백남준아트센터, 통영국제음악당 등 여러 공간에서 라이브 라이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글씨의 중첩과 재배치를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노들섬 스페이스445, 2024년 무대륙, 2025년 Factory2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공명>에서 라이브 라이팅 텍스트는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를 통해 음악적 멜로디로 재해석되고, AI를 거쳐 시각적 이미지로 확장된다.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변환되며, 작가의 심박, 각성도, 정서의 발란스 등 생체 데이터가 감성 컴퓨팅 기술을 통해 예술적 형태로 연결된다.
최노아 작가는 좌식형 테이블에 설치된 콘택트 마이크와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텍스트를 그리는 과정이 악기 연주자의 즉흥연주와 실시간으로 결합된다. 계수정의 피아노는 사운드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박민희의 보이스와 이상원의 미디어아트가 함께 참여해 표현을 확장한다. AI는 ‘제5의 퍼포머’로 참여하여 텍스트, 사운드, 시각적 형상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킨다. 기술이 감정을 객관화하거나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확장하는 예술적 언어임을 실험한다. 수집된 감정 데이터는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감정 상태를 시각적·청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되며, 궁극적으로 장애인 지원 로봇 개발에 적용될 수 있는 실험적 기반이 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장문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사 포스터에는 분홍색으로 Senses(센스)라고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이번 공유회는 여러분의 잠들어 있는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느낌을 선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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