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장애계소식 정보&뉴스
By
더인디고-
[더인디고 = 무필 집필위원] 얼마 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늑대 한 마리가 탈출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생포를 목적으로 수색 중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사살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합니다. 우리를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간 한 생명이, 곧바로 ‘위협’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 이 장면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정상 사회’의 작동 방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표준’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동물원의 늑대는 인간의 안전과 관람의 편의를 위해 격리됩니다. 그 울타리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질서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그 경계를 넘는 순간, 늑대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같은 존재임에도, 어디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변화는 늑대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설정한 경계에서 비롯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한 신체적·인지적 능력이 ‘표준’으로 설정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는 ‘비정상’ 혹은 ‘부적응’으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보호’와 ‘관리’라는 이름 아래 시설이라는 공간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시설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차이를 분리해내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늑대를 우리에 가두는 논리와 장애인을 시설에 두는 논리는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다수가 설정한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장애는 ‘결함’이 아니라 ‘구조’다
우리는 오랫동안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장애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특성과 사회의 환경, 그리고 그 사회가 무엇을 ‘정상’으로 간주하는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관계적 결과입니다.
과거 마서즈 비니어드(Martha’s Vineyard) 섬에서는 농인과 청인이 함께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수어를 사용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듣지 못함’이 사회적 배제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조건이 다른 환경에서는 장애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서아프리카의 바도마 공동체에서도 특정 신체 특성은 삶의 방식과 충돌하지 않았기에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례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장애는 개인 안에 고정된 결함이라기보다, 사회가 어떤 속도와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과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기준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개인만이 그에 맞추어 끊임없이 조정되기를 요구받습니다.
교감은 철창 밖에서 시작된다
늑대가 인간과 교감하며 ‘개’로 변화해 온 과정은 억압의 결과라기보다 관계의 축적에 가깝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완전히 지우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어진 접촉과 공존의 경험이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진정한 교감은 가둔 채 관찰하는 관계에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마주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름’을 만날 때, 공존의 조건을 넓히기보다 분리와 격리를 먼저 선택해온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시설 중심주의와 비장애 중심주의는 그렇게 형성된 또 하나의 ‘우리(Cage)’입니다. 이 울타리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우리의 인식과 제도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탈출한 늑대가 사살이 아닌 구조를 통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시설’들을 들여다보는 뼈아픈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누군가를 가두어야만 유지되는 정상성이라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결함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가두지 않고도 안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일한 기준의 요새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속도로 숨 쉴 수 있는 ‘광장’의 넓이여야 합니다. 시설 중심주의라는 낡은 ‘우리(Cage)’를 부수고 나올 때, 비로소 배제 없는 진정한 ‘우리(We)’의 공동체는 시작될 것입니다.
[더인디고 THE INDIGO]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