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특히 장애인의 고령화는 더욱 빠르고, 노인이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장애인 복지 체계는 ‘활동지원’ 이라는 단일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 고령장애인의 다양한 욕구를 해결하기에 턱업시 부족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범사업 중인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장애인 노후준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개인예산제가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장애인의 노후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 해외사례를 알아보고, 시범사업의 개선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영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직접지불제(Direct Payments)’와 ‘개인예산제’를 도입하여 운영해왔다. 영국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예산 사용의 유연성이다. 고령장애인은 단순히 신체활동 보조를 넘어 주거개조, 건강관리, 여가활동 등 다양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 영국의 고령장애인들은 개인예산을 활용해 활동지원사를 고용하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보조기기를 구입하거나, 지역사회 노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NDIS)는 ‘선택과 통제’를 핵심 가치로 내걸고 있다. NDIS의 강점은 전 생애 주기에 걸친 유연한 계획수립에 있다. 장애인이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 미리 노후의 주거모델이나 건강관리 계획을 예산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호주는 장애인이 65세가 되어 노인요양 체계로 전환될 때 발생하는 서비스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예산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2024년부터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며 제도안착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시범사업 모델(특히 활동지원 기반 모델)이 고령장애인의 불안한 노후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결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기존 급여를 쪼개쓰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운영은 탈피해야 한다. 현재 시범사업은 활동지원급여의 일부(10~20%)를 떼어 다른 서비스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고령장애인은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해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 준비를 위해 기존 돌봄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는 가혹하다. 장기적으로는 기존 급여 외에 노후특화형 ‘추가 예산’을 확보하거나, 호주처럼 전 생애적 관점에서 예산의 유연성을 대폭 강화해야만 한다.
둘째, 65세의 서비스 절벽을 메우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장애인이 65세가 되어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될 때 급여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문제는 고질적인 현안이다. 개인예산제가 이 전환기에서 발생하는 서비스 공백을 보충하거나, 장애 특성에 맞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민간에서 유연하게 구매하도록 완충기능을 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노후의 서비스 연속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셋째, 노후설계를 돕는 전문 코디네이터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해외 사례의 공통적인 특징은 당사자가 예산을 어디에 쓸지 결정할 때 도움을 주는 '조력자(Brokerage)'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지능력이 저하되거나 정보접근이 어려운 고령 장애인에게는 예산관리와 서비스 탐색을 돕는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시범사업에서도 계획 수립을 돕는 전문가가 있지만, 노후설계 전문성을 갖춘 사례 관리자로서의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넷째, 예산 사용처를 노후 특화형 서비스로 과감히 확장해야 한다. 집 안의 문턱을 없애는 주택개조, 고령장애인 운동 프로그램, 부모사후를 대비한 법적·행정적 지원 서비스까지 다양한 노후준비 과정에 개인예산이 쓰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물품과 서비스 구매를 넘어, '지역사회에서 늙어갈 권리'를 지원하는 포괄적인 서비스 구매가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단순히 복지 전달체계를 바꾸는 것만이 아니다. 장애인이 노년에도 '시설'아닌 '지역사회'에서, '남의 손'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존엄의 문제다. 시범사업의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를 보완해 나갈 때, 비로소 개인예산제는 장애인 노후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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