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제46회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올해의 장애인상(3명), 국민훈·포장(6명), 대통령 표창(5명), 국무총리 표창(6명) 수상자를 확정해 발표했다. 이들에 대한 시상은 20일 서울 비스타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석상에서 진행됐다. 올해의 수상자를 소개한다.
■올해의 장애인상(3명)
"선택할 수 없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유석종(남, 43세, 시각장애,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프로): “장애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다는 겁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유석종 씨의 문제의식은 자신의 삶에서 출발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안내견을 분양받으며 그는 ‘이동’을 넘어 ‘삶의 기준’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전에는 외출하려면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먼저 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안내견과 함께하고 나서는, 내가 가고 싶은 시간에,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에게 안내견은 단순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 계기였다.
사범대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임용시험도 합격한 상태였다. 그런데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1년 계약직으로 입사제안이 왔다. 고민 끝에 안정적인 길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 입사했다.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던 최초의 시각장애인 직원이었다.
이후 그는 20년간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을 연결하는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안내견 분양을 원하는 시각장애인과의 상담을 통해 생활환경과 이동 방식, 성향을 살피며 각자의 삶에 맞는 안내견을 연결한다. 그는 20년 동안 약 200여 명의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온 것이다.
“‘이제 혼자 나갈 수 있겠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밖에 나가려 해도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고, 언제 움직일지조차 스스로 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제도 개선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안내견 출입 제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제도 논의에 참여해 왔다.
안내견을 필요로 하는 시각장애인에 비해 실제 분양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장애인 보조견 분양 신청자 643명 중 실제 분양은 134명에 그쳐, 분양률은 약 20.8%에 머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법은 바뀌었지만, 인식은 아직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의 관심은 가족으로 확장됐다. 상담 현장에서 만난 많은 시각장애인이 이동뿐 아니라 양육과 교육, 일상생활의 부담을 가족과 함께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인 배우자와 두 자녀를 둔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장애인 청소년을 위한 진로개발캠프와 부모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가족이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그는 장애인가족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가족 지원 정책과 정보제공에도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유석종 씨의 활동은 현장 실무를 넘어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로 이어지며, 시각장애인의 삶의 선택지를 넓혀온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5년 집 안에 머물던 삶에서, 도시를 바꾸는 사람으로”
이경희(여, 58세, 지체장애·청각장애, 화성시장애인 누릴인권센터 센터장): “저는 25년 동안 거의 집에만 있었습니다.” 두 살 때 의료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경희 씨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는 대부분 집 안에서 흘러갔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세상과 연결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전환점은 25세 무렵 찾아왔다. 함께 살던 형제자매들도 독립하고, 혼자 집에 남아 우울한 일상이 계속됐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장애인도 교육과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그는 곧바로 교육기관에 연락했다.
그렇게 인천 노틀담교육원에 입소, 평소 즐겨하던 뜨개질 실력을 살려 기계 편물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아, 전국대회 수상부터 수녀원 등 전국 각지에 납품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응시하며 학업도 시작했고, 남편도 만났다.
아이 둘을 낳은 후 그의 사회생활은 다시 단절되었다. 당시 계단만 있는 빌라에 거주했는데, 계단을 난간을 잡고 오르내리며 가사와 육아를 감당해야만 했다. 활동보조인이 없던 시절이었다. 혼자 팔의 힘에만 의지해 아이 둘을 키우다보니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팔에 마비도 오고, 관절이 다 녹아내렸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어려운 시절이었다.
2017년 장애인활동지원이 제도화되고 둘째 아이가 세 살이 되면서 다시 사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인천IL센터에서 시간제 근무를 제안받았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후원자를 모집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왠지 ‘나의 장애를 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에 회의감이 들던 찰나, 마포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출연 제안이 왔다. 라디오 방송을 하며 그녀처럼 휠체어를 탄 친구 4명을 만나, 그들과 휠체어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전국을 다녔다. 대중교통부터 숙소까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역마다 다른 승강 환경, 접근이 어려운 시설 등 이동 중 마주한 문제를 기록해 민원으로 제기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다시 요구했고, 현장에서 확인하며 개선을 이끌어냈다. 그러다 장애물 없는 시민연대,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등에서 장애 인식개선 교육 강사와 편의시설 조사요원으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경희 씨의 활동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제도 변화로 이어졌다. 당시 화성시 장애인 콜택시는 2~3대에 불과했지만, 그는 반복적인 문제 제기와 개선 요구를 이어갔고, 그 결과 현재는 68대로 확대됐다. 이동권을 둘러싼 환경이 실질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무장애 관광 조례’다. 장애인이 실제로 이동하고 이용할 수 있는 관광 환경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고 시의원과 함께 입법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해당 조례는 발의·통과되어 현재 시행 중이며, 지역 내 관광 환경 개선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그는 화성시장애인누릴인권센터에서 활동하며, 인권교육과 제도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그의 교육 활동은 학생과 공무원, 교통 종사자 등 약 6,000명을 대상으로 이어져 왔으며, 현장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공무원과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행정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오랜 시간 집 안에 머물러야 했던 한 사람이, 이제는 지역의 제도를 바꾸고 있다. 그의 변화는 개인의 삶을 넘어, 지역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장애인이구나’ 깨달음에서 출발‥사회의 길을 만들다
정원석(남, 65세, 지체장애, 한국장애인녹색재단 회장): 그는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중증장애인이 됐다. 처음에는 고개도 못 움직일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전국을 돌며 치료한 결과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로 호전되었다. 초중고를 일반학교를 다녔다. 성인이 된 이후 회사생활을 할 때까지도 스스로 장애인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느 날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아, 내가 장애인이구나.’” 정원석 씨의 삶은 그 깨달음에서 방향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 그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 이후였다.
그는 질문을 던졌다. “장애인은 왜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2002년, 그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 유권자 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도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참여하며, 장애인의 권리가 제도로 자리 잡는 과정에 힘을 보탰다.
그의 시도는 늘 ‘처음’이었다. 다만 그는 권리에 머물지 않았고, 문제의식을 실제 삶의 변화로 연결하는 데 집중해 왔다. “권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이 신념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용산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과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2009년 전국 최초로 중증 여성장애인 전용시설인 ‘포도원복지센터’를 설립해 12년간 운영하는 등 현장에서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일에 힘써왔다.
그는 늘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시설 이용자와 가족,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문제를 확인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포도원복지센터를 운영하던 시기, 한 장애 아동이 수술을 앞두고 있었지만,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직접 나서 치료와 지원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했고, 이후의 생활까지 함께 고민하며 아이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한 번은 입소 당시에는 욕만 하던 당사자가 책도 읽고 등산도 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모습을 봤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포도원 복지센터 입소 결정을 할 때 딱 한 가지 조건을 건다. ‘한 달에 두 번은 반드시 원 가정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의 정이 이어지기 위해선 꾸준히 만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포도원 복지센터는 한 가정 한 가정을 살리는 곳이고, 시설은 보호의 공간을 넘어 삶을 이어가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다.
현재는 한국장애인녹색재단을 이끌며 장애인 일자리와 환경을 결합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강 고수부지에 장애인 숲 5개소를 조성하고, 이곳에서 발생한 탄소배출권을 서울시에 후원하는 등, 장애인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사회적 역할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단지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판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 먼저 도전해 기반을 만들고, 일정 수준이 자리 잡으면 또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을 이어왔다.
주변에서는 그를 ‘길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보고, 그 길이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원석 씨는 그렇게, 한 번의 깨달음에서 출발해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하나씩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길을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장애인이 스스로 소득을 만들고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영역을 먼저 개척하고, 그 길이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국민훈장(3명)
모란장-임흥빈(남, 65세, 지체장애, 전라남도장애인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 장애인의 정보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사비로 전남장애인신문을 제작해 복지, 재활 등 정보 제공했다. 지역사회 장애인의 심리‧정서적 지원을 위해 전라남도 장애인 민원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유관기관 연계를 통한 장애인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했다.
목련장-이경욱(남, 68세,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상임고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통일염원 대행진’ 행사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통합 및 장애인의 자신감 회복에 기여했다. 장애인 정보화 교육, 장애인 운전면허 취득사업 등 장애인의 인식개선 및 사회참여를 위한 복지사업에 참여 및 후원을 다수 진행했다.
석류장-김락환(남, 73세, 지체장애,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회장): 사비로 경북 구미시에 재활자립복지회관(가구공예, 금‧은 세공)을 건립해 장애인의 재활 및 자립에 기여했다. 또한 경북장애인 기능경기대회 개최, 경북장애인복지단체협의회 출범, 구미시장애인종합복지관 준공 등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국민포장(3명)
박현실(여, 56세, 목포장애인요양원 행정지원과장): 중증장애인의 케어기술과 밀접한 여러 실천기술들을 개발하여 매뉴얼화하고 지역 및 관련 단체에 보급했다. 무연고 장애아동을 오랜 기간 결연‧후원하는 등 사회복지기관 및 외연 단체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조헌찬(남, 70세, 지체장애, 부산광역시산업재해장애인협회 부회장): 산재장애인복지사업단 설립, 산재장애인종합상담지원사업 운영 등 업무상 재해로 장애를 입은 근로자의 사회복귀에 노력했다. 특성화 고등학교, 장애인고용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해 안전 및 장애인식개선에 기여했다.
김종택(남, 63세, 지체장애,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전남협회장): 장애인이 주도하는 봉사활동 조직을 추진하여 장애인의 생활환경 개선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수혜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사회의 나눔문화 확산, 스포츠 행사를 개최해 장애인의 사회참여 기회 제공 등 장애인의 사회적 소외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통령표창(5명)
허정용(남, 63세, 신세계의수족연구소 대표): 해외연수를 통한 선진 의지·보조기 기술을 습득하여 국내에 도입을 통해 국내 의지·보조기 기술향상과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다. 지역사회 내 장애인을 대상으로 의지·보조기의 무상점검 및 수리서비스 제공했다.
권순종(남, 65세, 지체장애,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영천시와 장애인일자리사업 위탁협약을 체결하여 지역 내 장애인 고용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영천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및 영천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대표위원으로 활동해 지역사회 복지 거버넌스 강화에 기여했다.
안종태(남, 60세, 충청북도곰두리체육관 관장):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충북선수단 훈련‧지도, 곰두리체육관(장애인체육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에게 다양한 재활체육 서비스 제공 등 장애인의 건강한 삶을 지원했다.
민복기(남, 61세, 하남시장애인복지관 관장): 장애인복지관 신규후원 확보, 직업훈련‧일자리사업 운영, 대학교 강의 등을 통해 복지증진 및 발전에 공헌했다. 바리스타, 요리교실 등을 통해 정신장애인의 사회참여 기반을 강화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력하여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환경을 조성했다.
이미선(여, 53세, 쉼터 선임사회복지사):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깊은 이해 및 보완대체의사소통(AAC) 개발을 통해 개인별 서비스를 지원했다.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을 통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장애인 복지 전문가로서 후배 직원들에 멘토 역할을 수행했다.
■국무총리상(6명)
김진(남, 54세, 아르테문화복지회 대표): 교육부 점자교과서 제작 매뉴얼 위원 참여 등을 통해 점자 교재 제작 및 보급에 힘썼다.
박주영(여, 52세, 지체장애, 전주대학교 교수): 재활학과 전임교원으로 장애인재활상담사, 직업재활사, 직업능력평가사 등 장애감수성 높은 재활전문가를 배출했다.
유종옥(여, 59세, 국립소록도병원 조리주사보): 매일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장애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급식 등 서비스 제공했다.
권혜경(여, 55세, 경상남도장애인종합복지관 팀원): 33년간 66,000명이 넘는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심리치료·부모상담·부모교육 등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귀경(여, 67세, 평화의 마을 원장): 24년간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운영하여 중증장애인의 안정된 고용을 실현했다.
강지원(여, 60세, 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구미지회 후원회 부회장): 구미지회 후원회 부회장으로서 많은 사람을 후원에 동참하게 하고 오랜 기간 식품을 후원해 시각장애인 자립생활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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