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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경의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 리뷰
장사연 조회수:93 125.131.193.163
2026-05-06 13:45:45

장윤경의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 리뷰

  • 기자명칼럼니스트 서인환
  •  
  • 입력 2026.05.06 13:15

【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 장윤경 작가는 자폐성 발달장애인 화가 양예준의 엄마다. 에이블뉴스 칼럼리스트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분이기도 하다. 이번에 책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저자 장윤경, 출판 스미다, 236쪽, 정가 17,000원)를 내게 되었다며 나에게 보내 주었다.

아이가 ‘천재’라는 말에 질투가 났다. 아들 자랑이 다른 장애 부모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질투가 사라졌다. 정말 천재구나 인정하게 되었고, 자랑이 아님을 알았다. 출판사에서 제목을 정하고 디자인하는 등 상품화로 인해 내가 지나친 오해를 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지나쳤다면 큰 실수를 했을 것이고 엄청난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 표지. ©스미다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 표지. ©스미다

자폐성 장애인의 특징은 애착증과 상동행동, 반향어, 소리에 민감하고 시각추구를 한다. 주로 우뇌를 사용하므로 시각적 사고를 한다. 예준이는 손을 흔드는 상동행동이 있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손에 쥐어준 것이 색연필이었다.

2021년 빅이슈 크리스마스 특별판 표지에 공모를 통해 선정된 양예준의 그림이 내가 양예준과의 첫 만남이었다. 주거취약자 지원을 위한 발간판으로 “산타와 루돌프의 휴식은 빅이슈와 함께”라는 제목의 표지 그림은 699대 1의 경쟁에서 선정된 작품이다.

이때 양예준의 나이는 불과 11세였다. 선물배달을 마치고 방역 조치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그림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잡지에서 찾고자 하는 그림을 맞춤형으로 잘 그렸을까 싶었다. 더구나 발달장애인이라니 감탄스러웠다.

자칫 영재를 키운 엄마의 이야기는 궁금하면서도 자랑처럼 느껴져 조금의 거부감이 생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미리 알았는지 자랑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 글을 썼다고 첫 페이지에서 밝혔다. 무려 중학생인 예준이가 70개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으니 자식 때문이 아니라 자식 덕분이라고 할만하다.

예준이가 영재원에 입학했고, 어머니 장윤경 작가가 미술작가 엄마 커뮤니티(그림 엄마) 리더가 된 것이 예준이 덕분이라는 말에서 오해할 수 있으나, 예준이가 잘 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점점 장애 부모들이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라고 여겨야 함을 호소하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찾는 과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준이의 세계는 욕심을 버려서 얻은 것이었다.

아들의 세례명을 기적을 바라며 ‘모세’라고 짓고 싶었으나 신부님이 ‘사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했을 때, 어둠의 역할을 하라는 말인가 여겼다는 작가는 지금은 사도 요한이 가장 사랑받는 자임을 안다. 세례식 날 성당의 발달장애인 형이 선물로 준 스케치북의 물고기 그림이 예준이를 미술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울 것 같아 입학 유예를 하고, 치료실을 찾아다니고 인지치료 가정교사까지 두었지만, 가정교사는 결혼을 한다며 그만두었다. 예준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잘 살아갈 것인데, 어쩌면 엄마가 학교에 보낼 준비가 안 된 것이었다. 지금은 장 작가는 기다려주고 안아주는 것이 중요하며, 온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라는 하늘의 사명을 안다고 말한다.

어린이집 담임으로부터 온 영상(예준이 행동)을 보고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강화물 사탕도 예민하여 거부하는 예준이, 칭찬과 사랑의 미소가 레시피인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아이에게 미소를 보낼 수 없었고 가르쳐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직접 예준이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져 갔다. 아날로그 시계판을 같이 읽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에는 상동행동을 줄이려고 약물치료를 하였으나 무기력증 등 부작용으로 약물을 끊었다. 아들을 통해 상동행동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특히 시각추구는 보는 것에 대한 관찰과 마음을 담는 장점이 되어 주었다.

아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작가는 교문 앞 헬리콥터가 되어 맴돌았다. 완전통합학급에 있으면 보조인력을 받을 수 없는 사정을 경험했다. 중증이 우선이고 도움반 아이가 우선이었으며, 비용을 자부담해서라도 보조인력이 교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으나, 다른 학부모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담임은 ADHD 아동을 짝으로 하였다. 관찰이 쉽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그래도 장애 정도가 덜 심해서 받았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아 ADHD 아이를 짝으로 했다는 말이었다. 예준이가 수학 시간에 다른 사람 문제지를 보고 베꼈다고 시험지를 빼앗았다며 담임은 도움반으로 내려가라고 강요했다. 작가는 불안해서 베낀 것도 사회성의 발전으로 봐 줄 없느냐고 항변했다.

담임은 힘들다며 병가를 내어 임시 강사가 열 번이나 바뀌는 수업을 받아야 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학부모회장은 장애학생반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작가는 정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폭력성이 있는 ADHD 학생을 특수반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에 작가는 특수학급은 문제아를 보내는 곳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작가는 다른 친구의 아픔도 생각해야 함을 아들을 통해 배웠던 것이다.

치료실 부모 면담 시간에 예준이에게 색연필을 쥐어 주었는데, 예준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칭찬하자 예준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수구, 냉장고 등 주변에 본 것들을 그렸다. 그림도 하나의 애착증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고, 왜 미술 시간에 그리는 풍경 같은 것은 안 그리나 싶기도 했다. 애착이 아니라 집중이고 적성일 수도 있음을 알고 계속 그림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린 그림이 쌓여 집안은 무당집 같았다.

하루는 예준이가 세례식 때 선물 받은 스케치북에 색칠을 하는 것을 보고 그 형이 공모전에 도전했다는 말이 기억나 예준이도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대회에서 주어진 도구에는 색연필이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예준이가 크레파스로 ‘하트 하수구판에 걸린 머리카락’을 그렸다. 가장 행복했던 장면을 그리라고 했는데, 예준이는 규칙적인 무늬가 있는 하수구판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준이가 상을 받게 되고 화가 선생님의 멘토링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예준이는 달력에 그림 그리러 가는 날을 표시하고 기다리더니, 몇 달 후 자신이 화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멘토링 공모전에서 수상 소감을 예준이는 마음을 그리는 화가가 될 거라고 말하였다.

멘토링 화가의 지도가 끝나고 예준이를 받아줄 학원을 찾지 못하자, 장 작가는 직접 미술치료사와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다. 명화 그림 사진을 구해 그려보기도 하고 전시회를 찾기도 했다. 치료실을 찾아다니며 대기실을 별다방으로 여겼던 작가에게 결혼이 늦어서 장애아를 낳았다는 상처를 주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여유를 가지고 사랑으로 대해주는 의사도 있었다. 그리고 아음으로 대해주는 치료사도 만났다. 언어치료실 원장의 응원에 장 작가가 웃기 시작하자 예준이도 웃는 아이가 되었다.

2학년이 되어 예준이와 친하게 지낸 쌍둥이 아이가 있었는데, 그들의 엄마는 어릴 때 자폐성이 있었고, 조현병으로 집안일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작가는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그 엄마와도 친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자존감을 높여주고자 공모전에 계속 도전하고 싶었다. 어떤 분이 공모전을 알려주는 앱을 알려주었다. 욕심이 아니라 즐겨야 함을 늘 명심하였다.

많은 공모전을 대하다 보니 모든 미술상이 다 같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권위가 다르고 지향점이 다름을 발견하는 순간, 첫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고유한 화풍이 생기는데, 타인의 시선 따위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표현할 줄 아는 발달장애인이야말로 행복을 즐기는 자신만의 화풍을 가질 수 있다. 예준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장애아가 아닌 화가가 되었다.

교사에게 관심지도를 부탁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바쁘다거나 한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교사가 아이에 대해 알고 싶으니 아침마다 아이에 대한 것을 문자로 알려달라는 교사가 있었다. 알리려면 알아야 했다. 알기 위해 아들과 대화를 해야 했다. 아들과의 대화는 주로 일과에 대한 대화인데, 알고 싶은 것과 알리고 싶은 마음이 합쳐진 것이다. 대화 속에서 예준이도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힘이 길러졌을 것이다.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사람들은 점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할지 몰라도 노력한 기억과 땀의 가치를 알고 최선을 다했다.

양예준 작가가 2024년 개인전(오목한 미술관)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 ©장윤경
양예준 작가가 2024년 개인전(오목한 미술관)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 ©장윤경

예준이가 친구의 놀림을 받고 자신이 장애인이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정하며 속상했겠다 위로를 했지만, 중학생이 된 지금은 ‘장애인 맞아. 작은 주머니를 가지고 태어났지, 느리고 불편할 뿐, 노력하면 친구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정체성과 행복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엄마의 사명이라 믿는다.

보조인력 출입을 허가받았지만, 코로나로 수포로 돌아갔다. 영상수업은 오히려 엄마가 도와줄 수도 있고, 다른 아이의 얼굴들을 보면서 수업을 할 수 있어 도움이 된 점도 있었다. 코로나 캠페인 광고 공모전에 당선되어 인터뷰를 하는데, 원고를 가지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매우 어려웠다. 피디가 보고 싶은 친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자연스러운 대답이 나왔고, 그것이 광고의 마지막 장식이 되었다. 버스 안의 영상광고가 2년 반이나 나오면서 예준이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작가는 욕심을 버리자 하늘이 아들의 재능을 보게 해 주었다고 말한다. 러쉬코리아라는 화장품 회사에서 자연보호와 장애아를 위한 많은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데, 러쉬코리아 오티즘엑스포도 그중의 하나다. 복지관에서 멸종동물 공모전에 도전해 보라고 해서 대답은 했지만, 동물을 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화가 한부열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림으로 소통하는 것을 지원하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늘 힘이 되었다.

멸종위기 전시회를 돌며 소재를 찾도록 도왔다. 우연히 크라프트지를 선택했는데, 결국은 큰 기회가 되었다. 처음에는 파란 얼굴에 뭉실뭉실 털이 난 오랑우탄을 보고 새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으나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는데, 완성된 그림을 보니 덧칠하고 지우고 긁어서 번들거리는 작품이 되었다. 수상 후 복지관 강사가 ‘그림 엄마’라는 발달장애인 그림 화가 엄마 모임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그 카페에서 한젬마 기획자도 만났다.

수상 작품 전시회에서 우연히 ‘사치 갤러리 공모전’ 광고를 보았다. 러쉬코리아와 전시 기간 동안 작품을 다른 전시회에 내지 못한다는 계약이 있는 것도 모르고 오랑우탄 작품을 출품했다. 러쉬코리아는 양해를 해 주었고, 덕분에 ‘스타트 아트페어 참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사치(Charles Saatchi)는 영국에 있는 갤러리 설립자 이름이며, 청년 신인화가 발굴을 주 사업으로 하는 곳이다.

예준이는 수상 소감으로 “살려 달라는 마음을 그렸다”고 했고, 영국과 국내 심사위원들은 예준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공모전에 장애를 밝히지 않고 당당히 초등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된 것이다. 러쉬코리아 우미령 대표는 결국 장 작가의 한을 풀어준 셈이다.

예준이가 신부전증이라는 오판을 받았을 때, 낫게만 해 주시면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하늘에 약속을 했다. 예준이도, 엄마도 건강에 문제가 있어 현재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하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에이블뉴스에 칼럼도 쓰고, ‘그림 엄마’ 리더도 하고, 이 책도 썼다. 경험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봉사인 것이다.

장윤경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기자 생활을 한 바 있다. 예준이에게 길을 열어준 것은 상동행동이나 시각추구가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사고할 수 있는 이력 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화가 예준이가 시각에 마음을 담는 방법과 자신만의 화풍을 개발한 것은 마음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엄마와의 많은 대화와 도전, 미소가 새로운 세계를 가지도록 한 것이리라.

굵은 선과 애절한 표정, 거친 선의 강렬함, 그리고 번진 듯한 몽환적 표현, 오랑우탄을 비롯한 모든 작품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진정 그림이 예준이의 언어인 것이다. 욕심을 내어 스파르타식 미술교육을 했다면 스스로 만든 독창적 미술 세계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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