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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영화 마녀 감독 자폐 아들과 돈가스 먹다 폭행 당해 사망”
김창민 감독과 김다미 배우의 얼굴 사진 위로 짤막하고 크게 쓰여진 기사 내용에 숨이 멎었다. 몇 번 반복해서 읽어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처럼 보였다. ‘설마?’ 눈을 의심하며 관련 기사를 찾았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자폐성장애인은 공격성이 있다 해도 집요하게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러진 않는 걸로 알아서 진실을 알고 싶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불특정 다수의 애꿎은 장애인에 대한 질타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암울했다.
보름 쯤 지나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늦은 밤 돈가스 먹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 갔던 고인은 옆 테이블의 20대 청년들과 시비가 붙었다. 일곱 명의 청년들이 시끄럽게 잡담하는 걸 보고 고인이 먼저 다가가 조용히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자폐인 아들이 떠올랐다. 보기 불편한 상황에 놓이면 자신과 관련이 없어도 화를 내거나 자해하던 어린 시절의 아들. 말을 못하니 온몸으로 의사 표현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가 보였다. 짐작하건데 고인도 아들의 평소 행동 패턴을 잘 알기에 그런 상황을 미리 방지하고자 그들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자비하게 아들이 보는 앞에서 고인을 때리고 질질 끌고 나가 죽음에 이르게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최초 119에 신고한 경찰은 발달장애인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했다고 말한 기록이었다. 그래서 처음 기사가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났던 거였다.
이후의 검찰과 법원은 한 사람의 사망 사건을 어이없게 수사하면서 영장 기각 등 가해자에게 아무런 법적 조치 없이 일상을 살게 했다. 억울한 죽음 앞에 유가족의 진실 규명 요구가 흐지부지될 즈음 국민들의 관심이 이 사건을 다시 불러냈다. 여론이 들끓고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집회 “고 김창민 감독 부실수사 규명 및 책임자 처벌 결의대회”에서 고인의 부친을 마주했다. 마이크 잡은 손은 떨렸고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감내했을 거대한 슬픔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처벌 받은 이 하나 없는 상황에서 재수사가 시작되었으니 가해자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저세상의 아들에게 아비로서 떳떳할 것 같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왔다.
새벽 1시경 돈가스 먹고 싶다는 아들과의 동행, 고인의 일상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달래도 소용없음을 알고 고인은 아들과 그 야심한 시각에 식당을 찾았을 것이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 중에 여전히 자녀의 시중으로 힘들게 사는 지인들이 있다. 타고 난 성품 탓도 있겠지만 어릴 때 단호하게 잡지 못한 양육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다. 양육 태도의 문제라 해도 부모 탓만은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어떻게든 아이 비위 맞추려고 안간힘 쓰며 살 수밖에 없었음을 장애인가족만이 공감한다. 너그럽지 못했던 우리 사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그 모든 것을 꿋꿋하게 견뎌서 과거보다 편안해진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장성한 자녀와 매일 전쟁 치르듯 사는 이들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올해 만 30세를 넘긴 자폐성장애인 아들과의 삶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억지로 살아낸 날이 많았다. 외식은 도전과제였고 외출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편하지 않았다. 남의 이목을 끄는 무의미한 소리와 행동은 엄마인 내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차라리 외출을 삼가자고 다짐하면서도 어차피 어울려 살아야 할 세상, 피하지 말고 맞서자는 오기가 생겼다. 잘 몰라서 의아하게 바라보거나 신기하게 쳐다보는 이들을 위해 아들을 많이 노출시키자는 생각으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물론 나는 아들의 그림자였다. 반사회적 행동이나 자해, 타해 외의 행동은 봐주기로 하면서 나는 점점 뻔뻔한 엄마가 되었다. 세상은 냉정한 것 같지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온정이 돌아올 때도 많았다. 일희일비와 분노의 순간들도 많았고 어설픈 동정심과 섣부른 배려도 내가 잘 수용하면 아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넓어질 거라 믿었다.
신체적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계단 대신 경사로가 필요하고 에스컬레이터보다는 엘리베이터가 안전하다. 정신적 장애인은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불편 줄까봐 전전긍긍하는 발달장애인가족들이 미안한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위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죄를 뒤집어 씌우는가 하면 적절한 지원없이 구속해 버리는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의의 실종이 참담하다.
6개월이 지나서야 고인의 죽음에 의미가 생겼다. 억울한 죽음을 추도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사회적 관심이 생기길 바란다.
발달장애인의 몸짓과 소리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들의 소리를 소음으로 여겨 불편을 말하기보다 알아들으려 귀 기울이는 이들이 많은 사회, 그런 사회를 바라는 것이 장애인가족의 이기심은 아니라고 다독여 주는 따뜻한 세상을 소망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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