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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지 않게 하는 기술에서, 나에게 맞게 걷게 하는 기술로”
장사연 조회수:64 125.131.193.163
2026-05-11 13:39:10

“넘어지지 않게 하는 기술에서, 나에게 맞게 걷게 하는 기술로”

  • 기자명칼럼니스트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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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보행보조기구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두 장면을 따로 생각한다. 하나는 노인이 롤레이터를 밀며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 현장에서 외골격 장비를 착용한 노동자가 무거운 하중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다. 전자는 복지기기, 후자는 산업기술로 분류된다. 그러나 보행장애인의 현실에서 이 둘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보행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장치만이 아니다. 몸의 무게를 분산하고, 약화된 근력을 보완하며, 균형을 감지하고, 관절 움직임을 보조하며, 실제 생활환경에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보조공학적 통합 시스템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니라 개별 보행장애인의 장애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행장애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만, 실제 양상은 매우 다르다. 어떤 사람은 뇌병변으로 인해 한쪽 다리에 경직과 끌림이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척수손상으로 체중지지가 어렵다. 또 어떤 사람은 파킨슨병으로 보행 동결과 짧은 보폭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은 근감소나 관절질환으로 피로가 빠르게 누적된다. 같은 ‘걷기 어려움’이라도 원인, 속도, 균형 능력, 근력, 감각, 통증, 피로도, 보조기기 사용 경험은 모두 다르다.

 따라서 보행보조기구는 단순히 제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보조공학에서 중요한 것은 기기 자체보다 기기와 사람 사이의 적합성이다. 사용자의 신체 기능, 장애 유형, 보행 패턴, 상지 사용 능력, 인지 능력, 생활공간, 이동 목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그 사람에게 맞는 보조 수준을 설계해야 한다. 보행보조기구는 ‘누구에게나 맞는 표준품’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몸과 삶에 맞춰 조정되는 기술’이어야 한다.

현재 노인용 보행보조기구는 안정성 확보에는 유용하다. 워커와 롤레이터는 지지면을 넓히고, 상지로 체중을 분산시켜 낙상 위험을 줄인다. 그러나 이 장치들은 대부분 수동형이다. 사용자의 근력 저하, 편마비, 경직, 보행 리듬 장애, 피로도 증가 같은 문제를 능동적으로 보완하지 못한다. 결국 “넘어지지 않게”는 해주지만, “그 사람답게 걷게” 하지는 못한다.

반면 산업용 보행보조기구와 외골격 로봇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터는 고관절과 무릎관절에 필요한 힘을 보태고, 센서는 보행 의도를 감지하며, 제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춰 보조 강도를 조절한다. 압력 센서, 관성측정장치, 근전도 신호, 자세 제어 기술은 보행장애인의 잔존 기능을 읽어내고 이를 실제 이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 보조가 아니라 기능 회복과 기능 대체, 기능 확장의 영역이다.

그러나 첨단기술도 개인의 장애 특성을 읽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표준화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뇌병변 장애인의 경직성 보행에는 관절 각도와 속도 조절이 중요하고,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보행 리듬과 시각·청각 단서가 필요할 수 있다.

척수손상인의 경우에는 체중지지와 균형 안정화가 핵심이며, 근감소 노인에게는 과도한 보조보다 잔존 근력을 유지하게 하는 보조 강도 조절이 중요하다. 같은 외골격 장비라도 누구에게는 독립보행의 가능성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불편하고 위험한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행보조기구의 미래는 개인 맞춤형 보조공학에 있다. 기기는 사용자의 보행 데이터를 학습하고, 좌우 비대칭성, 보폭, 보행 속도, 체중 부하, 피로 누적, 낙상 위험을 반영해 보조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의 하루 생활을 고려해야 한다.

집 안에서 이동하는 사람, 병원 재활훈련을 받는 사람,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 지역사회에서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기능은 서로 다르다. 보행보조기구는 신체만 보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맥락까지 읽는 기술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들이 보행장애인의 일상으로 충분히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용 장비는 고가이고, 무겁고, 복잡하며, 주로 작업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개발된다. 노인용 보조기구는 저렴하고 접근성은 높지만 기능이 제한적이다. 그 결과 보행장애인은 저기능 보조기구와 고기능 첨단기술 사이의 빈틈에 놓인다. 이 빈틈이 바로 보조공학 정책이 채워야 할 자리다.

정책도 품목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보조기기 지원은 “어떤 품목을 지원할 것인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이 사람에게 어떤 기능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 보행장애인의 장애 특성, 생활환경, 사회참여 목표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기기 선정·피팅·훈련·사후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조기구는 지급으로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조정되어야 하는 서비스다.

보행보조기구의 맞춤화는 단순한 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안전과 직결된다. 맞지 않는 보조기구는 낙상을 줄이기는커녕 낙상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손잡이 높이, 바퀴 저항, 브레이크 위치, 보행 보조 강도, 착용 압박, 관절 정렬, 무게 중심이 사용자의 몸과 맞지 않으면 보조기구는 보조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특히 중증 보행장애인에게는 작은 오차도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보조공학센터, 재활의학, 물리치료, 작업치료, 사회복지서비스가 연결되어야 한다. 사용자의 보행 기능을 평가하고, 실제 생활환경을 분석하며, 필요한 경우 기기를 수정하고, 사용 훈련을 제공하는 통합 체계가 필요하다. 보행보조기구를 잘 쓰게 하는 과정까지 포함되어야 비로소 보조공학이다.

보행보조기구는 더 이상 단순한 복지용품이 아니다. 그것은 재활공학, 로봇공학, 인간공학, 사회복지정책이 만나는 통합 기술이다. 더 나아가 이동권을 실현하는 사회적 장치다. 보행장애인에게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 동작이 아니라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가고, 투표소에 가고, 이웃과 만나는 시민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보행보조기구의 미래는 “붙잡고 걷는 기구”가 아니라 “나에게 맞춰 함께 걷는 기술”이어야 한다. 노인용 보조기구의 안정성, 산업용 외골격의 동력 보조, 센서 기반 재활공학의 정밀성, 그리고 개인의 장애 특성을 반영하는 맞춤형 설계가 결합할 때 보행장애인의 이동은 비로소 복지의 최소선이 아니라 권리의 수준으로 확장된다.

넘어지지 않게 하는 기술을 넘어, 다시 걷게 하고, 나에게 맞게 걷게 하며,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기술. 그것이 보행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의 다음 과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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